[이슈분석]기술유용, 적발·제도개선 성과냈지만…“기업도 변해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유용행위 근절대책'(이하 근절대책)을 수립·추진한 지 2년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발간한 공약집에 '기술탈취'를 직접 언급하면서 개선 의지를 강조했고 이를 위한 세부 시행계획이 2017년 9월 나온 근절대책이다.

근절대책 발표 이후 공정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술유용 사건은 지난 수 년 동안 제재 실적이 거의 없었지만 근절대책 발표 이후 2년 만에 5건을 제재했다. 실효성이 부족했던 법·제도도 대폭 개선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기술유용 피해를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많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감시·처벌 강화, 법·제도 개선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도 스스로 변해야 기술유용이 뿌리 뽑힐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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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부터 한화까지…적발 실적 '쑥'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자료 요구·유용을 금지한 하도급법 규정은 2010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 6년 동안 공정위가 기술유용을 적발·제재한 사례는 사실상 한 건 밖에 없었다. 이 기간 공정위는 총 5건을 적발했는데 이 가운데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는 2015년 LG화학 사건 하나였다. 나머지 4건은 시정명령만 내렸다.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기술유용 피해는 계속됐다.

법무법인 소속 한 변호사는 “하도급법상 기술유용이 금지된 지 수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대기업이 적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오죽했겠나”면서 “공정위에 직접 신고가 된 사례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몰라도 현장에선 기술유용 문제로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2017년 근절대책 발표 이후 공정위 움직임은 바빠졌다. 기술유용 사건을 전담하는 팀을 구성했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전문으로 심의를 하는 '기술심사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무엇보다 종전대로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그간의 신고사례·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직권조사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지난 2년 동안 5건의 굵직한 사건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근절대책 발표 후 공정위의 첫 제재 사례는 두산인프라코어였다. 공정위는 하도급업체의 굴삭기 관련 기술자료를 유용한 두산인프라코어에 과징금 3억79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관련 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공정위는 청소기 업체 아너스의 기술유용을 적발했다. 대·중소기업 사이만이 아닌, 중견·중소기업 사이에서도 기술유용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제품이 관여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공정위는 작년 말부터 볼보그룹코리아, 현대건설기계·현대중공업의 굴삭기 관련 기술유용을 적발해 건설기계 시장의 불공정 관행 개선에 나섰다. 최근에는 한화가 태양전지 제조 기술을 탈취한 사실을 적발, 과징금 3억82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관련 임직원 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주요 사건 처리에 수년에 걸리는 사실을 고려하면 2년 동안 기술유용 5건 적발은 상당한 성과”라면서 “현장의 문제를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한 실적이지만 '정부가 기술유용을 감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벌 강화하고 사각지대 해소

공정위는 위법 행위 적발·제재에 적극 나서는 한편, 법·제도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기술유용 시 처벌을 강화하고, 제재 사각지대를 없애는 게 핵심이다. 공정위가 근절대책에서 발표한 주요 법·제도 개선 과제를 점검한 결과 대부분 계획대로 이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유용 혐의 대기업이 '공정거래 협약제도 우수기업' 혜택을 받아 직권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약기준을 개정했다. 기술유용 관련 3배 손해배상제도 배상액은 '3배 이내'에서 '10배'로 확대할 계획으로, 관련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하도급법 개정으로 '기술자료의 제3자 유출'을 금지했다. 그동안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얻은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유출한 것을 확인해도 유출 기술자료를 유용했는지 여부를 입증하지 못 하면 제재가 불가능했다.

공정위는 중소기업 경영정보 요구 행위를 금지하는 한편, 정당한 사유가 없는 공동특허 요구는 불법으로 규정했다. 기술유용이 은밀하게 이뤄져 뒤늦게 적발되는 특성이 있음에도 조사시효가 3년(목적물 납품 후)으로 짧은 문제도 해결, 기간을 7년으로 늘렸다.

기술유용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위법성 판단 기준을 완화했다. 사업활동방해 조항의 위법성 요건 중 '심히'라는 표현을 '상당히'로 개선했다.

중소기업 기술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보호 대상이 되는 기술자료 정의를 개선했다. 종전에는 기술자료를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수행 방법에 관한 자료”로 정의했는데 이를 '합리적 노력'으로 수정했다.

다만 기술자료 정의는 한층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기술자료를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수행 방법에 관한 자료' 또는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로 판단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둘을 모두 충족해야 기술 자료라는 주장이 나온다. 두 정의를 하도급법에서 쉼표로 구분해 표현하면서 일어난 혼선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선 해당 법령 해석 때문에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면서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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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중소기업도 변해야”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거래를 공정위 직원 몇 명이 모두 감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도 변해야 한다”는 게 업계 공통 지적이다. 정부 뿐 아니라 대기업, 중소기업이 거래 관행을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의 기술유용은 '갑을관계'에서 비롯된다. 대기업은 계약을 빌미로 중소기업에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중소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넘긴다. 이후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계약을 맺지 않고 기술만 가로채가는 형태가 전형적 기술유용 사례다.

대기업이 기술자료를 받을 때 중소기업에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관행이 정착되면 기술유용은 크게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은 '부당·위법한 원가절감'을 경계하기 위한 직원 평가체계 등을 갖추고,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 차원 변화도 필요하다. 대기업에 넘기는 자료가 자사 노하우가 담긴 기술자료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유용에 대비해 관련 근거를 갖출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계약 성사를 위해 기술자료를 덜컥 넘겼다가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중요한 기술은 함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평가다.

기술유용을 예방하기 위해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적극 이용할 필요도 있다. 거래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일정한 조건하에 서로 합의해 핵심 기술자료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제도다. 중소기업은 기술유출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대기업은 해당 중소기업 파산·폐업시 해당 임치물을 이용해 기술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중소기업 노력은 대기업 협력이 전제돼야 하는 경우가 많고, 영세한 사업자 입장에서 여력이 부족하다. 관련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기술자료를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대기업이 '거래할 중소기업은 많다'면서 소위 갑질을 할 수도 있다”면서 “정부와 대·중소기업 간 노력이 공동으로 이뤄질 때 기술유용 근절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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