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 현장에서는 30여년 전부터 한·일 간 기술 격차 문제를 우려해 왔다. 최근 일본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주요 기계 부품과 생산 장비를 오랫동안 공급하고 사후관리(AS)해 오면서 한국의 현장과 기술 현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 사고에 익숙한 일본 관리들로서는 한·일 간 외교 마찰 시 언제든 쓰고 싶어하는 카드였을 것이다.
한국 경제 규모와 국민소득 수준에서 볼 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과의 부품기술 및 장비기술 격차가 심하다. 그동안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투여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은 대부분 극복됐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수많은 주변 기술을 동원한 전략 기술은 여전히 우리 과제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시행해 온 정부의 산·학·연 협력 체제에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는 것으로 이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R&D 자금은 충분히 투여했지만 현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기술 개발 인력 부족과 단기 실적 요구에 따른 개발 기간이라는 문제에 본질이 있다.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할 때다.
한국 대기업의 자본과 시장 논리 때문에 장기간 필요한 기술 개발은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고, 귀중한 기술 인력 또한 보호하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야 했다. 고급 인력의 대기업 쏠림 현상 때문에 부품의 기술 혁신을 해 나갈 중견·중소기업에는 기술 개발 인력이 태부족이다. 일본에서는 국민 세금이 투여되는 국립대 출신을 민간 기업이 독점할 수 없다는 국민 정서 아래 전후 50년 넘게 암암리에 제한해 왔다고 전해 들은 바 있다. 이 점이 일본의 대졸 이상 고급 기술 인력이 지방 중견기업에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는 등 중소기업 기술과 지방국립대 발전의 핵심이다. 이것을 모두 장인정신의 결과로만 잘못 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첫째 대기업의 협력 회사 기술 개발 참여가 절실하다. 고급 기술 인력을 블랙홀처럼 안고 있는 대기업들이 자사 제품 협력 회사와 납품 회사의 기술 개발에 직접 참여해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일부 대기업에서 유사한 형식을 취하는 곳도 있지만 인력과 자본 사정이 매우 열악한 중소기업에 단가 절감과 성능 향상을 일방으로 요구하거나 자문역에 머무르지 말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시책을 의무화해서 시행해야 한다.
둘째 중장기 기술 개발이 가능한 산·학 협력 기술 개발 체제 구축이 절실하다. 국내에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분원 운영으로 지역 산업단지에 기술 개발을 독려해 왔다. 그러나 다수 고액연봉 연구원의 기술 개발 장기 참여로 인한 경제 효과는 정부 재무 구조상 쉽게 용인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산업계 문제 해결에 나설 연구원과 기술원 부족의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됐다.
독일 공대에는 프라운호퍼라는 대형 산·학 협력 시설이 설치돼 있고, 대학원생과 박사연구원들이 현장 기술을 경험하는 등 실전형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대와 산업체 간에 이 같은 산·학 협력 기술 개발 상시 체제로 가칭 한국식 중기종합기술원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출연연 분원들이 현재의 지역 산업 특성에 맞춰 충분히 설치돼 있다. 이 풍부한 개발 자원의 운용 효율 방안으로 연구소 설립을 제안하는 바다. 현재 출연연 분원을 광역별로 묶어 거점대학의 중기전략연구소로 체제 변경을 하고, 중앙에 네트워크 방식의 기술원을 둬 전국에 배치돼 있는 시설과 인력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
또 시설과 박사연구원 아래 대학원생을 지속 투입할 수 있도록 산업체 유경험 대학교수가 연구소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는 병역특례 전문연구원을 중기 전략연구소에 집중 배치해서 관리·운영하는 방식이다. 재직 연구원들의 저항이 매우 크겠지만 지속된 인력 공급 체제에서 국가 차원의 절실한 기술 개발을 이어 가면서 대학 교육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어 지방 공대와 연구소, 산업체가 모두 발전할 수 있는 체제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셋째 사내 전용 공정기계 개발과 기술자 양성을 서둘러야 한다. 제조 업체는 각사 특성에 따라 일부 공정에서 사내 전용 기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역량이 기술 혁신을 결정짓는 회사 경쟁력이다. 센서, 제어, 시뮬레이션, 정밀설계, 조립 시스템 등 전용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고급 기술자 양성이 시급하다.
이선규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계공학부 교수 skyee@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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