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생'을 말하는 세상이다.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을 말하는 '기대수명'은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증가해 2017년 82.7세까지 늘어났다. 남성 기대수명은 79.7세, 여성은 85.7세나 된다. 암이나 각종 질병 치료가 발전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결과다.
그러나 건강한 노년의 꿈을 방해하는 위험요인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치매가 대표적이다.
중앙치매센터는 올해 초, 30년 후인 2050년에 치매환자 수가 3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4년 전 조사 결과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결과다. 치매환자 발생 속도가 예상치 않게 빨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의학계에서 치매는 당면과제이자 난제다. 아직 발병기전 등을 완전히 밝히지 못했다.
다만 최근 치매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치매 치료의 단서는 다름 아닌 장 속에서 나왔다. 자폐증과 파킨슨씨병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이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생쥐모델에서도 장내 미생물 군집 변화가 보고됐다.
국내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장내 미생물과 알츠하이머병과의 연관성을 규명했다.
묵인희 서울대 교수, 배진우 경희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치매 생쥐모델의 장내 미생물 군집의 종 구성이 정상 생쥐와 다르고 만성 장 염증을 갖고 있는 것을 관찰했다. 미생물 군집이 변해 장벽기능이 약화되고 장내 독소가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 염증반응이 온 몸으로 번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반대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생쥐모델에 16주간 주기적으로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투여했다. 분변 미생물군 이식을 통해 장내 환경변화를 유도했다. 그 결과 질환 생쥐모델의 기억과 인지기능 장애가 회복됐다. 뇌 속 치매 관련 특정 단백질이 쌓이는 증상과 신경세포의 염증반응도 완화됐다. 장 조직 세포의 퇴화와 혈중 염증성 면역세포 수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돼 전신적인 염증 반응이 감소했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을 바로잡으면 알츠하이머병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장 미생물과 뇌 신경세포(뉴런) 사이의 신호 교환에 관여하는 세포 및 분자 작용 과정을 규명했다. 장 건강이 정확히 어떻게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밝힌 것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 23일 네이처에 공개됐다. 연구팀은 장의 미생물군이 감소했을 때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규명하기 위해 생쥐 실험을 진행했다. 항생제를 투여해 장의 미생물 수를 줄이거나 무균 상태에서 기른 집단을 사용했다. 장 속 유익 미생물이 없는 생쥐는 외부 환경 변화를 인지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연구팀은 생쥐의 뇌에서 면역 작용을 하는 소교세포(microglia)의 RNA 염기서열을 분석해,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확인했다. 건강한 생쥐의 소교세포에선 이런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소교세포의 유전자 발현에 변이가 생기면 학습에 필수적인 시냅스 생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무균 생쥐에서 조현병·자폐증 등과 연관되는 일부 대사산물 농도에 변화가 발생한 것도 알아냈다.
연구팀은 반대로 생쥐의 장 미생물군을 복원하면 학습 능력이 개선되는지도 실험했다. 그 결과 무균 생쥐는 기억 능력을 되살릴 수 있지만 태어난 직후에 개입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데이비스 아티스 면역학 석좌교수는 “장, 뇌 축(gut-brain axis)이 일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서 “어떻게 장이 치매, 자폐증, 우울증 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