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간 경제 전쟁이 심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기술력 향상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정부는 핵심 소부장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3년 동안 5조원 이상의 집중 투자 계획을 밝히고 소부장 산업 육성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투자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은 기술 보호다. 국내에도 세계 수준의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많은 인력·시간·자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했지만 단 몇 분, 며칠 만에 모방한 기술이 나온다.
2017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실태조사를 보더라도 매년 기술 탈취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2014년 대비 2017년 기술 유출 비율은 3.3%에서 3.8%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평균 피해 금액도 13억원을 넘는다. 기술력이 제품 판매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부장 기업의 절대 다수가 중소벤처기업에 속하고 있는 가운데 기술 개발 투자를 독려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이들이 열심히 개발한 기술 보호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기업의 기술 보호를 위해 특허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특허법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일부 기업들은 특허를 교묘하게 베낀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일단 기술 유출이 발생하면 특허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승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허는 무형 자산인 만큼 눈으로 바로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선에서 만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기술 탈취와 관련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특허소송을 진행해도 기간과 비용 소요가 많고, 침해 사실 입증을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특허소송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특허를 도용한 자를 제재하고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진정한 특허권자이며 상대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피해 당사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
대기업은 부담이 적지만 중소벤처기업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배상액도 높게 책정되지 않아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이후 차라리 손해배상을 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나돌아다닐 정도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기술 개발을 위한 다양한 지원과 정책은 무척이나 환영할 일이다. 중소벤처기업의 경우 R&D에 대해 투자하고 싶어도 자본이나 인력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에 R&D 투자는 곧 새로운 기술 개발, 나아가 국가 산업의 원동력이 될 수 있어 적극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이미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열심히 개발한 기술을 빼앗기고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개발 노력만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허에 대한 강력한 보호는 기술 발전의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기술 보호가 이뤄진다면 기업의 R&D 적극 투자로 기술 발전이 이뤄지고, 나아가 산업 발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소부장 기업의 기술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부터 산·학 모두 힘을 모으고 있는 시기다. 전폭 투자와 지원만큼이나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 보호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기껏 기술을 개발하고도 보호받지 못한 소부장 기업들은 R&D 투자에 소극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금 한국 산업의 대외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국내 소부장 산업의 기술 독립은 원천 기술 투자와 함께 기술에 대한 강력한 보호 정책에 달려 있다.
백광현 중앙대 전자공학부 교수 kbaek@ca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