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공정'이다. 앞서 3차례 시정연설에서 공정경제에 대해 강조한 바는 있지만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정 연설에서는 경제 분야를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공정개혁'으로 확대됐다. 지난 두 달여간 '조국 사태'로 불거진 불공정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면서 남은 2년 반 집권 후반기에 국정 방향의 기본을 '공정'으로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민의 요구를 깊이 받들어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민의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며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말했다. 공정 가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 정책협의회'를 중심으로 공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새로운 각오로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 불공정 바로잡겠다”…정시 확대 공식화 논란
문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특혜 입시 논란을 의식한 듯 교육 불공정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시 확대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정시 확대 방침에 혼란이 예상된다. 그간 교육부는 정시 확대가 아닌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불과 하루 전인 21일 국정감사에서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시확대 요구는 사실상 그 원인이 학종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것”이라면서 “학종 공정성을 높이는 것에 먼저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계획에 따라 교육부는 2022학년도에 도입할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4년 전 예고제도에 따라 현 시점에서 우선적으로 가장 빨리 반영할 수 있는 학년이다. 하지만 이미 정부는 2022학년도 입시에 정시 30% 이상을 권고한 바 있다. 30% 보다 높은 비율을 대학별로 더 높일 지원책을 교육부가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별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현 고1 학생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 해 결정된 2022학년도 입시 정책에 따라 주요 대학이 30% 선에서 정시를 반영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언제 얼마나 정시를 확대할 것인가로 논란이 옮겨갈 경우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 부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교육시설공제회에서 열린 특성화고 현장실습 관련 부교육감회의에 참석해 “구체적인 (상향) 비율을 이야기하긴 어렵다”면서 “시정연설의 큰 방향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는 조금 더 협의하고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날 자유한국당도 정시 비율 확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정시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키로 했다.
◇“검찰개혁 멈추지 않겠다”…야당 반발 심화
문 대통령은 정부의 핵심 과제인 검찰 개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재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감찰과 공평한 인사 등 검찰이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며 “국민들뿐 아니라 대다수 검사들도 바라마지 않는 검찰의 모습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개혁은 입법부의 뒷받침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수사권 조정법안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국회에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
검찰개혁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야당을 겨냥해 “검찰이 스스로 엄정한 문책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사정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국정농단사건은 없었다”고 역설했다.
야당은 공수처법 등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 의지와 달리 국회에서 공전할 가능성이 짙다.
문 대통령은 채용 비리와 관련해서도 엄단을 약속했다. 그는 “채용비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강도 높은 조사와 함께 엄정한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면서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며 “탈세, 병역, 직장내 차별 등 국민 삶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불공정을 과감히 개선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