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반환점을 돌아 벌써 마지막 분기다. 찬바람이 시원하게 불지만 정치판은 여전히 펄펄 끓는 용광로다. 조국 장관 지지와 반대파로 갈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광복 직후의 정치 격변기가 따로 없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이나 중구 광화문 광장에 모인 군중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혹시나 2019년의 '9'라는 숫자 때문일까. 9는 '아홉수'라며 꺼리는 숫자다. 나이에 아홉수가 들면 결혼·이사와 같은 큰일까지 미룬다. 과학적으로 근거 없지만 마지막 숫자가 주는 불안감과 나이가 바뀐다는 압박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도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위안을 삼고 싶다. 그래도 판이 너무 커졌다.
아홉수가 낀 '불길한' 2019년이지만 전자 산업 역사로 보면 의미가 남다르다. 전자 산업 태동 60년이다. 기준점을 너무 겸손하게 잡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기·전화를 도입한 대한제국 말이나 민족자본이 형성된 광복 전후, 우정 역사가 시작된 1884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50년대 말을 여명기로 잡은 배경은 '산업' 관점이다. 산업이 형성되려면 기업이 있어야 하고, 연구개발(R&D)과 제품 생산 및 판매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1959년'이다.
1959년은 국산 라디오가 나온 해다. 1958년에 설립된 전자 '시조 기업' 금성사(옛 LG전자)가 이듬해 11월 라디오를 처음으로 '공장'에서 생산했다. 모델명은 'A-501'이었다. 전자라는 용어도 낯설고 공산품이라고는 외국산 라디오와 미제TV가 전부인 시대였다. 부품 하나 만들지 못하는 시절에 자체 라디오 생산은 기적이었다. 그것도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거둔 성과였다. 라디오 생산을 시작으로 기틀을 잡았고, 정부도 '전자공업진흥법' 등으로 화답하면서 산업화를 이뤘다.
라디오 국산화 10년 후인 1969년에 처음으로 공산품 박람회가 열렸다. 장소는 덕수궁 옆 국립공보관 자리다. 전자 산업도 60주년이지만 공교롭게 한국전자전도 50주년이다. 일주일 일정으로 열린 1회 행사에 금성사 등 83개 업체가 참가했다. 흑백 TV와 라디오를 비롯해 스피커·콘덴서 등이 전시됐으며,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 50주년을 맞는 전자전은 이달 8일부터 코엑스에서 전자산업 60주년 역사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여명기를 거쳐 대한민국 간판산업으로 성장했다. 반세기 만에 TV와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가전은 물론 반도체·휴대폰 등 주요 전자제품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추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1980년대까지는 중화학공업, 건설업 등이 성장을 견인했지만 1990년대 이후 주역은 단연 전자 산업이었다. 연평균 10%가 넘는 고속 성장을 이어 가면서 전체 수출의 40%, 무역흑자의 70%,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올라갔다. 2000년대 'IT 강국'도 전자 산업이라는 기반이 받쳐 주었기에 가능했다.
전자 산업도 이제 환갑이다. 1960년대 국민소득 60달러에 불과하던 대한민국을 3만달러,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이끌었지만 이제는 숨이 턱까지 올라와 있다. 가전으로 시작해 TV, 다시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으로 세대 교체를 이뤘지만 성장 측면에서 꼭지를 찍었다. 불행히 아직 바통을 이을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전자 산업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다시 '아홉수' 이야기다. 사주명리에서 아홉수는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라는 메시지다. 전자 산업도 마찬가지다. 더 늦기 전에, 그래도 기력이 있을 때 다음 산업을 준비해야 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