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2019년 '비메모리 반도체'와 1616년 '아리타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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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 소재 수급 문제로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 발표로 한·일 간 무역 분쟁을 넘어 동북아 안보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 7월 3일부터 나흘 동안 일본과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규슈 지역 비전 투어에 참가, 현지를 방문했다.

규슈는 가야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통로였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 철기 가공 기술은 가락국으로부터 규슈 가라쓰 지역으로 전수됐다. 또 조선은 500~600명 규모의 조선통신사를 열두 차례 파견, 조선의 발달한 문물을 일본에 전해 줬다. 그 뒤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 도공을 강제 이주시켰다. 세계의 명성을 얻게 된 일본 도자기 아리타야키도 이 시기에 생산돼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이때 끌려간 도공을 포함한 기술자는 무려 10만명이 넘는다.

아리타에서 채색 자기가 생산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국제무역항인 나가사키의 존재에 있다. 당시 나가사키에는 중국의 강남 상인들이 드나들었고, 이들에 의해 최신 도자기 샘플·기술·재료가 일본으로 직접 유입됐다.

아리타야키는 조선, 중국을 아우르는 국제 벤치마킹 산물이었다. 또 명·청 교체기를 맞아 동중국 일대에서 복명운동을 벌이던 정성공 일파를 진압하기 위해 청조가 강력한 해금령을 발동하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 수출 대체품으로 아리타야키를 주목하게 됐다.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처음으로 수출, 급기야 유럽 도자기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19세기 말 당시 도자기 수출은 개항 초기의 극심한 국제수지 불균형으로부터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원천 기술은 조선에서 왔지만 선진 기술 도입과 시장 확대를 통해 끊임없이 혁신에 매진한 것이 일본 도자기 융성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7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에 대한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또 안전보장상 우호국에 한해 수출허가 신청을 면제하는 '백색국가' 27개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제 한국 반도체 산업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업은 1969년 삼성전자가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흑백 TV를 생산하면서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 2010년에는 세계 최대 전자회사가 됐다. 올해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133조원을 투자,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겠고 선언했다. 이는 패스트 팔로어로서 전방산업인 일본 소재·부품 산업을 활용해 비교우위 경쟁력을 갖춘 중간 제품을 생산, 수출해서 이뤄낸 성과에 기반을 뒀다. 그러나 세계 1위 반도체기업이 된 현 시점에서 새로운 글로벌 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양국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에 야기된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의 대 한국 수출 금지, 백색국가 지정 한국 제외 문제와 지소미아(GSOMIA) 연장 파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선진 우방국임을 상호 인정하고, 글로벌 무역체제 아래에서 자유무역 정신을 살려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겠다.

일본은 400년 전 조선 도자기를 발전시켜 세계 시장에 진출해 근대화와 국부 창출을 이룩한 경험이 있다. 현재 한국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일본 아리타야키처럼 국부 창출과 미래 산업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지금도 규슈 비전 투어 해설을 해 주던 일본인 마스부치 게이이치 한일문화교류회장이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는 버스에서 부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랫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정완길 前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원장(HM&CO 상임고문) wkchung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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