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고정금리 대출 상품인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에 총 74조원 상당의 신청이 이뤄졌다.
당초 예상액 20조원의 4배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신청이 폭주했지만 일부 오류를 제외하고 큰 장애 없이 마감됐다. 기존 대면 위주 대출 프레임을 '스크래핑'이라는 정보기술(IT)을 전면 적용, 대출 문턱을 대폭 낮춘 것으로 평가된다.
30일 정보통신·금융권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는 안심대출 시스템에 스크래핑 기술을 전면 도입, 기존 대출에 필요한 종이 서류 제출을 없앴다.
통상 금융권이나 정부 대출을 받으려면 대출 신청 후 필요 서류를 은행 창구에 찾아가서 제출하거나 우편이나 팩스로 발송했다. 그러나 안심형 전환대출은 종이 서류 제출을 모두 없애고 스크래핑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증빙 업무를 대폭 간소화했다. 이 덕분인지 전환 신청에만 65만5000건이 접수됐지만 큰 장애 없이 기존 대출 시스템에 비해 쉽게 신청이 완료됐다. 안심형 전환대출 시스템에 적용된 스크래핑 기술은 쿠콘이 엔진을 공급했다.
대법원의 혼인관계증명서는 물론 가족관계증명서, 정부24에서 발급하는 주민등록 등·초본,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자격득실 확인서, 국세청 소득 유무 증빙 서류까지 모두 본인 인증 이후 클릭 한 번에 서류 제출이 자동으로 이뤄졌다.
스크래핑은 쉽게 말해서 금융기관, 공공기관, 기타 기관 등 웹사이트에 접속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긁어 오는 기술을 의미한다.
쿠콘 관계자는 “안심전환 대출에 스크래핑 모듈을 적용하고 주택금융공사와 협업해 기술 지원을 했다”면서 “정보 유출이나 시스템 장애 등 큰 문제 발생이 없이 마무리가 잘됐다”고 말했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의 핵심은 다양하고 복잡한 서류를 인터넷으로 제출받는 스크래핑 기술이 적용됐기에 가능했다”면서 “대출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12개 이상의 민원서류, 5개 이상 기관의 대외 연계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공사는 스크래핑 기술을 이미 도입해 충분한 기술 검증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출시를 위해 IT부서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수개월이 넘는 프로젝트 기간 동안 요건정의, 상품설계, 개발구현, 인프라설계, 성능분석 등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했다”면서 “만일의 사태를 위해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비상운영반을 가동, 24시간 즉각적이고 긴밀한 대응을 하기 위해 모든 직원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국내 대출 관련 시스템도 앞으로 스크래핑 기술을 통해 비대면으로 서류 간소화가 이뤄질 것이 전망된다. 도시보증공사는 주택금융공사의 안심전환 시스템을 벤치마킹, 대출 시스템 고도화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용 쿠콘 상무는 “현재도 많은 핀테크 스타트업과 금융사가 스크래핑 기술을 활용해 사업하고 있다”면서 “스크래핑은 이제 비대면 채널 운용의 핵심 IT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데이터 스크래핑에 대한 정부의 우려는 여전하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공인인증서 등을 활용한 스크래핑 금지 내용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올해 신정법 개정이 여러 이슈에 밀렸지만 데이터 스크래핑 금지 가능성이 국회에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대표 발의한 신용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 일부개정안에 스크래핑 기술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개정안 22조 10항 1은 본인신용정보관리회사가 전자금융거래법에 명시된 접근 매체를 활용, 신용 정보 주체에게 제공할 신용 정보를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안에 스크래핑 금지가 명시되진 않았지만 스크래핑 기술이 활용하는 모든 수단을 막아 사실상 기술이 사장될 수밖에 없다”면서 “데이터 산업 활성화 법안이 그동안 데이터를 잘 활용해 온 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핀테크산업협회는 신정법 개정과 관련해 스크래핑 금지 철회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김지혜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