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적용 대상에서 아파트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계시별 요금제를 적용하려면 가구별로 스마트계량기(AMI) 설치가 필수지만 한전 AMI 보급 대상은 일반 주택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전기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기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반쪽 요금제'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AMI 보급 계획과 관련해 “아파트의 경우 단지별로 고압 요금을 적용하고 있어 가구 내 전력량계는 개별 가구가 소유·관리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다.
즉 아파트는 정부·한전의 AMI 보급 및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AMI는 양방향 전력 통신망을 이용해 전력사용량·시간대별 요금정보 등을 제공하는 계량기다. 계절·시간대별로 상이한 요금 체계를 갖춘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는 AMI가 보급된 가구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전이 2020년까지 2250만 가구에 AMI를 보급하기로 한 대상에서 아파트를 제외, 추후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가 국내에 도입되더라도 아파트는 기존 누진 요금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한전 관계자는 “아파트는 전기요금 계약을 가구별 계약이 아닌 단체 계약 방법을 적용하고 있고, 관리사무소에서 전기사용량을 파악한 후 한전에 전기요금을 일괄 청구하는 방식”이라면서 “아파트는 가구별 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개별 AMI 설치 보급에 한계가 있어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적용이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산업부와 한전은 이달 23일부터 서울, 경기, 인천, 대전 등의 아파트단지 2048가구를 통해 계시별 요금제 실증 사업을 개시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스마트그리드 확산 사업을 통해 AMI를 보급한 일부 아파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아파트 거주자가 계시별 요금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한전과 1대1 개별 계약을 체결한 후 자체적으로 AMI를 설치하는 방법 외에 대안이 없다. 한전에 따르면 AMI 설치비용은 대당 15만~20만원 수준이다. 일반 주택은 한전이 AMI를 무상 보급하는 것과 대조된다.
법에 근거한 형평성 문제도 야기된다. 전기사업법 제6조는 '전기사업자 등은 보편적 전기 공급에 이바지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제20조에서는 '송·배전 사업자는 전기사용자에게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전기설비 제공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김삼화 의원실 관계자는 “전기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아파트 거주자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면서 “현재 계획대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도입이 추진된다면 '반쪽 요금제' '계륵 요금제'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당초 기대한 실효성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