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해도 명분과 실리에서 크게 잃은 것이 없다는 분석이 정부 내부에서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입장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해도 당장 우리에게 불이익은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가 개도국 지위에 대해 언급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6일 중국과 한국 등 30여개국이 WTO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한 무역을 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하도록 미 무역대표부(USTR)에 주문하면서다.
미국은 90일 이내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월드뱅크 분류 고소득국가, 세계 상품 무역비중 0.5%인 국가 등 네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라도 해당하는 국가를 부자국가로 지목했다. 트럼프가 제시한 마감 시한은 다음달 23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중국과 인도를 겨냥한 것이다.
WTO 내 가장 큰 화두인 수산물 보조금 금지와 전자상거래 협상을 두고 중국, 인도 등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갈등이 빚어졌다.
한국은 농업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만큼 수산물 보조금 협상에는 문제없이 참여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네 가지 기준에 모두 속하는 유일한 나라다.
산업부 관계자는 “만약 한국이 계속 개도국으로 남는다면 자칫 미국 대 중국의 싸움이 미국 대 한국의 싸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WTO에서 인정받은 관세우대나 보조금 지급 등 협상 지위는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해 30여개국에 서한을 보내 WTO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혀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대만,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 4개 국가가 미국 주장에 동조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내 협의가 진행 중”이라면서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경민 산업정책(세종)전문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