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가천대 총장은 열정의 아이콘이다. 그런 열정 원동력은 어디서 솟는 것일까. 해답은 좌우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총장의 좌우명은 '박애·봉사·애국'이다. 이런 좌우명을 갖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6·25 전쟁 시절 서울의대 재학생이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많은 남학생들이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 총장 마음 속엔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친구들 몫까지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런 열정이 의료와 교육으로 이어졌다.
그는 스승은 무릇 제자를 자식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지론이 있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처럼 스승도 제자를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 여긴다. 스승이 모범을 보이고 제자를 성심성의껏 가르치면 못 따라올 제자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곧 이길여 총장이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이다.
-가천의과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2012년 가천대학교로 출범한 지 8년이 경과했다. 짧은 기간에 입시기관이나 학부모가 바라보는 가천대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 총장 견해는.
▲우리 대학은 4개 학교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2006년부터 재단 산하 4개 대학을 통합해 2012년 통합 가천대학교가 출범했다. 많은 난관을 극복했다. 대학 통합을 위해 입학정원을 줄이는 살을 깎는 고통과 구성원 반발도 겪었다. '제대로 된 4년제 대학으로 글로벌 대학과 경쟁하겠다'는 일념으로 강행했다.
통합 이후 수도권 명문대학으로 도약했다. 입학 성적도 매년 상승하고 있다. 2019학년도 수시원서접수에서 2804명 모집에 5만9056명이 지원해 평균 21.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원자 수 기준으로 전국 4위다. 정시에서도 7.5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각종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대학평가 순위 상승 등 쏟아지는 성과를 보고 구성원들은 통합효과를 실감한다. 지금 대학사회는 학령인구 감소로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대학은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철저하게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한발 앞서 구조개혁을 시행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지금의 경쟁력과 높은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인재,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양성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가천대 길병원은 2016년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왓슨'을 암 진료에 도입했다. 또한 2020년 인공지능학과 학부과정을 국내 대학 최초로 개설한다. AI 선도대학을 지향하는 총장 구상은.
▲AI는 앞으로 정보기술(IT)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산업과 우리 생활 전 분야에 적용될 것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AI를 빼고 미래 경쟁력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를 살게 된다.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학부과정에 신설하고 가천대 길병원에 AI 왓슨을 도입한 이유다.
인공지능학과는 1·2학년 때는 소프트웨어(SW) 코딩, 수학 등 AI 기초를 탄탄히 다진다. 3·4학년에는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로봇공학, 데이터 과학, 기계학습, 딥러닝, AI 애플리케이션 등 심화과정 커리큘럼을 배우며 전문성을 키운다. 가천대는 SW중심대학 운영경험과 뛰어난 교수진을 갖추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미래산업 핵심역량을 지닌 인재양성에 앞장설 목표다.
길병원 왓슨은 290종 의학저널, 200종 교과서, 1200만쪽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학습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는 AI 시스템이다. 올해는 암 유전체 분석 기능인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를 추가로 도입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앞으로도 이 같은 AI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분야 AI를 선도하는 의료기관이 되도록 하겠다.
-가천대는 2019년 5월 중기부 메이커스페이스 전문랩에 선정됐다. 바이오헬스 제조창작 거점인 '초(超) 메이커시티'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의미와 진행 상황은.
▲지난 5월 중소벤처기업부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공모사업 전문랩 분야에 선정됐다. 앞으로 5년간 약 70억원을 지원받아 바이오헬스 제조창작 거점을 만들 계획이다. 바이오헬스는 미래차, 비메모리반도체와 더불어 국가 3대 미래성장동력 사업으로 선정돼 집중 육성하는 유망 분야다. 현재는 전통적인 제약·의료 등 전문가 영역에서 일반인 중심 정보통신기술(ICT)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가천대 메이커스페이스는 대학 SW 파워와 병원 의료역량을 결합한다. 바이오헬스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주민, 학생, 창업자가 어우러지는 개방형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역 주민 접근이 쉬운 지하철 분당선 가천대역과 직접 연결된 대학 비전타워에 1178m²(357평) 규모 메이커스페이스 전문 공간을 조성한다. 올해까지 제조창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내년부터 본격 사업을 펼쳐 4차 산업혁명 바이오헬스 중심지로 발돋움 할 것이다.
-지성의 요람인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대한 생각과 대학이 나아갈 방향은.
▲지금 우리는 기계와 인간이 경쟁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 교육도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기계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 고유 역량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 고유 역량이란 협업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 의사결정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전통적인 교육방법에서 탈피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배우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전통적인 '알기' 중심 교육에서 '해보기·돼보기' 경험중심 교육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진정한 교육혁신은 구성원과 비전을 공유하고 구성원 자발적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역량인 IT 소양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현장과 교육이 긴밀히 연계되는 '산학연계 교육' 활성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창의력과 독창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우리 대학은 이런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해 올해부터 강화캠퍼스에서 무박2일 동안 1학년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창의와 상상 캠프'(NTree)를 운영하고 있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밤을 새며 스스로 '배우는 법' '상상하는 법'을 익히고 경험한다. 창의적·디자인적 사고를 함양하는 디자인싱킹과 IT·SW 활용법 특강을 먼저 듣고, 팀을 구성해 창의·도전 주제를 정해 밤새 자신들만의 해결책을 찾는다. 우리는 이 캠프를 미국 스탠퍼드대학 '디스쿨(D-school)'과 같이 창의적 사고능력을 키워주는 가천대만의 21세기형 교육을 실천해 가고 있다.
-대학 총장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취업난 등으로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 세대들이 힘들어하고 노력해도 마음대로 안 돼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젊은 세대 강점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패가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는 약이 될 수 있다. 간절히 꿈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간다면 못 이룰 것이 없다. 실패나 좌절을 두려워 말고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고 간절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우리 학생들에게 틈만 나면 '바람개비 정신'을 강조한다. 거센 바람이 불수록, 바람개비는 더욱 힘차게 돌아간다.
◇이길여 총장은
1932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195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을 역임했고 서울대 의과대 동창회장을 5회 연임했다. 2011년 8월부터 2년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직 직함은 5개다.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이사장,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총재, 가천길재단 회장, 길의료재단 명예이사장, 통합 가천대 초대 총장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에게 딱 맞아떨어진다. 87세 나이에도 지난 6월 가천대 의학과 전 학년 160명을 대상으로 '나는 왜 의사가 되었는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열정을 학생들에게 전파했다.
은수미 성남시장, LH와 의기투합해 경기도 첫 '반값 원룸'으로 청년 주거복지를 실천했다. 학생들이 학비 부담 외에 학교 주변 방값이 너무 비싸다는 하소연을 자주 들었다.
그는 43살에 두 번째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중년이 감내해야 할 의학공부는 녹록지 않았다.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버텨냈다.
지금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겠다고.
정리=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