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들인 벤처펀드, 기업투자 망각한 '대부업 놀음'

혁신 벤처·중소기업이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VC)의 투자 횡포에 시름하고 있다.

창업 3년을 갓 넘긴 스타트업에 투자 원금을 즉시 갚지 않으면 연 복리 20%가 넘는 지연배상금을 물리겠다며 기존 조건보다 훨씬 불리한 재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자금 상황이 일시 어려운 기업은 기존 조건보다 훨씬 불리한 형태로 계약서를 다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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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모펀드는 재계약 시 채권 일부를 유동화 회사에 매각해 더 높은 금리를 추구하기도 한다. 해당 기업은 이익의 대부분을 20% 넘는 높은 이자와 원금으로 소진한다.

공공 목적의 투자 재원을 받은 PEF와 VC가 모험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기는커녕 대부업체에 준하는 수준으로 고금리를 매기며 약탈하듯 수익 확보에만 급급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가상현실(VR) 전문업체인 예쉬컴퍼니는 지난 3월에 2년전 큐캐피탈파트너스-JB자산운용으로부터 투자받은 30억원의 자금을 전액 상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코스닥 상장사인 모게임개발회사와 인수합병(M&A) 논의가 한창이던 시점이었다.

2016년 초 회사 창업 1년여 만에 기관투자가로부터 30억원의 운영자금을 유치했던 예쉬컴퍼니는 갑작스런 상환 요구에 크게 놀랐다. 계약 당시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만기가 2024년인 만큼 2년 만에 상환 요구가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투자계약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계약서에는 '투자자는 본건 BW의 발행일로부터 1년이 되는 날 이후 3개월마다 본건 BW 원금에 해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만기 전 조기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기대한 M&A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원금 상환이 어렵던 회사는 자금을 투자한 기관에 상환 유예를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더 큰 충격이었다. 조기 상환 기일에 맞춰 상환을 이행하지 않았으니 투자 계약에 따라 연 복리 20%의 지연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상환이 도저히 불가능한 예쉬컴퍼니는 분할 상환부터 대표이사의 신주인수권에 대한 콜옵션 포기 등 회사 측에 현저하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며 재계약을 요청했다. 그러나 신규 투자자를 유치해서 사채를 갚으라는 말과 함께 사채의 30%를 상환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한 상환 조건을 추가로 협의하자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예쉬컴퍼니 대표는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조기 상환을 청구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갑작스런 상환 청구로 말미암아 다른 VC로부터 추가 자금 유치도 어려워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투자사인 큐캐피탈파트너스에서는 “투자를 발굴하고 진행한 것이 JB운용인 만큼 공식 입장은 JB 측에서 듣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다. JB운용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는 예쉬컴퍼니에 투자한 펀드에 정부자금이 투입된 펀드라는 점이다.

실제 QCP-JB 기술가치평가 사모투자전문회사는 810억원 가운데 300억원을 은행권 등이 공공 목적으로 조성한 성장사다리펀드가 출자했다.

물론 전체 벤처펀드에서 BW 투자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BW 투자는 약 392억원으로 정부 예산이 직접 투입된 벤처펀드 가운데 1.1%를 차지한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PEF나 VC의 투자 계약은 기본적으로 사인 간 계약인 만큼 다소 피투자 기업 입장에서 불리한 경우도 있다”면서 “민간 자금을 모아 만든 펀드라면 모르겠지만 정부 자금이 투입된 펀드에서도 기업에 현저하게 불리한 투자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례를 순수 민간 자금으로만 구성된 PEF까지 넓히면 이 같은 상황은 더 많아지고 심각해진다.

실제로 대기업 협력사인 A사는 PEF의 갑작스런 상환 요청에 따라 불리한 계약서를 다시 썼다. 이 과정에서 당초 A사가 발행한 채권은 결국 유동화 회사로 넘어가게 됐고, 원금에 사채 이율 19%에 더해 매달 2억3000만원을 1년 동안 상환해야 한다. 영업이익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을뿐 비슷한 사례가 많다”면서 “정부자금이 배제된 민간 출자자로만 구성된 PEF의 경우 BW는 물론 전환사채(CB) 계약에 따른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성장사다리펀드를 운용하는 한국성장금융 관계자는 “민간 출자자에게 고수익을 제공하려다 보니 투자 단계에서 기업에 불만이 제기될 수준의 지나친 지연배상금이 책정된 것 같다”면서 “개별 펀드의 투자 관행 등을 살펴서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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