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역점 추진해온 '일감 몰아주기 근절'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상반기 마무리하기로 한 4개 사건 중 2건은 심사보고서를 상정한지 10개월째 심의 일정도 잡지 못했고 추가 조사에 착수한 다른 사건도 진전이 더디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가 사실상 포기 상태다.
1일 정부에 따르면 작년 11월 공정위 사무처가 심사보고서를 상정한 금호아시아나, 하림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 사건은 아직까지 심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위원장 시절 4개 일감 몰아주기 사건(태광, 하림, 대림, 금호아시아나)의 심의를 상반기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림, 태광 사건은 지난 5월과 6월 제재를 확정했지만 금호아시아나, 하림 사건은 아직 심의 일정을 잡지 못했다.
공정위 특성상 조사에 수개월~수년이 걸리는 사례는 많지만, 검찰의 기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를 상정하고도 심의가 10개월째 이뤄지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다.
공정위 내에서도 “너무 늦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사건절차 규칙에 따르면 사건 심의 부의는 심사보고서를 상정하고 피심인으로부터 의견서를 받은 후 30일 내 이뤄져야 한다. 다만 필요시 심의 부의를 연기·철회할 수 있다.
공정위는 금호아시아나 사건은 다른 사안과 병합심사를 해야 하는 이유로 심의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림 사건은 심사보고서 관련 소송 사안 때문에 아직 심의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 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4개 사건 외 공정위가 추가로 일감 몰아주기 혐의 조사에 착수한 다수 사건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미래에셋, 한화, 아모레퍼시픽 등이 대표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감시 대상을 중견그룹까지 넓히며 '선택과 집중'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작년 11월 국회 발의 후 10개월째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간 시각차가 큰데다, 다른 현안이 쌓여 있어 국회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공정위에서도 국회 처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다.
일감 몰아주기 근절로 대표되는 재벌개혁 정책 동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부진이 심화되고 일본 수출 규제 등 악재가 쌓이며 정부 3대 경제정책 중 하나인 '공정경제' 전반이 힘을 받지 못한다는 평가다.
후임 공정위원장 의지가 중요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경기가 악화일로인데다, 정부 임기가 조만간 반환점을 돌기 때문에 후임 위원장이 중장기 청사진을 마련해 강력한 공정경제 정책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공정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공정위원장을 한달 반 가까이 공석으로 두는 것은 문제가 크다”면서 “공정경제는 결국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 기업 경영을 돕는 것인 만큼 동력이 약화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