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등 전통 제조산업 업종에 대한 투자 규모가 10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벤처투자액이 10년 사이 4배 이상 증가했지만 비중은 오히려 뒷걸음쳤다.
바이오·의료 및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와 같은 신산업·융합산업이 떠오르고 경기 회복 속도가 느려지면서 산업의 근간이 되는 제조 기반 벤처에 대한 투자 의지가 약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22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의 업종별 신규 투자액 정보에 따르면 전기·기계·장비와 화학·소재 부품 분야 투자는 2009년 1681억원에서 지난해 2990억원으로 성장했다.
금액은 갑절로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벤처투자 전체 금액이 8671억에서 3조4249억원으로 약 4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투자 비중은 19.4%에서 8.7%로 절반 이하 축소됐다.
화학·소재 분야는 한층 심각하다. 2009년 신규투자액 1055억원에서 지난해 1351억원으로 소폭 상승에 그쳤다. 투자 비중도 12.2%에서 2002년 수준인 3.9%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바이오·의료 분야 벤처투자액은 2009년 638억원에서 2018년 8417억원 규모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2009년 이전까지 전기·기계·장비와 화학·소재부품 분야의 투자는 계속 증가했다.
전기·기계·장비 분야는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이 꺼진 이후에도 반도체 산업 성장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두 자릿수 투자 비율을 유지했다. 2002년 562억원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 2004년에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1655억원까지 치솟았다.
화학·소재 분야도 2002년 244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의 약 4%를 차지하던 상황에서 2007년에는 신규 투자액 1165억원, 비중 11.8%까지 투자가 늘었다.
벤처투자에서 대세가 바뀐 것은 2014년을 전후해 지식 기반, 고부가 가치 산업 위주 투자를 강조하면서다. 전통 제조업에서 바이오의료,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분야로 금액은 물론 비중 역전 현상이 이뤄졌다.
관련 업계에선 소재·부품 분야 투자에서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 난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개별 중소벤처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커졌다. 또 관련 분야의 첨단 기술을 파악하고 투자할 전문 인력도 부족했다.
벤처캐피털(VC) 입장에서 기술특례 상장 등 길이 열려 있는 바이오·의료 분야에 비해 뚜렷한 투자 회수 방안이 부족한 것도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VC 투자는 미래 먹거리를 내다보고 이른바 '트렌드' 투자 성향이 강한데 전통 제조업에 해당하는 소재·부품엔 투자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면서 “기술 난도가 높아진 산업 분야의 민간 투자를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투자활성화 정책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