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사과를 놓고 잡음이 거세다. 정작 불매운동을 폄하한 일본 본사는 사과하지 않았는데 마치 사과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는 분노다. 한국 법인이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인다.
사과는 했지만 반성은 없었다.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공식 입장은 사과라기보다는 항변이었고 면피에 가까웠다.
내막은 이렇다. 11일 일본서 열린 결산 설명회에서 오카자키 다케시 CFO가 한국 불매운동을 평가 절하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내에서 거센 역풍이 일었다.
유니클로 한국법인 에프알엘코리아를 통해 일본 본사 입장을 물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상황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본사에 전할 테니 기다려 달랬다. 회신이 왔다.
정식 사과문은 아니었다. 그저 질문에 대한 일본 본사 답변이었고 내용도 앞선 보도에 나온 몇 줄이 전부였다. 해당 발언 취지는 그게 아니었다는 해명이 담겼다. 발언 당사자인 오카자키 CFO 공식 코멘트는 어렵다는 답변도 왔다. 이게 유니클로가 사과했다는 전부다.
물론 한 기업 임원이 한국인을 도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통에 오해가 있었다는 황각규 롯데 부회장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언이 됐다. “불매운동 영향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은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었고 유니클로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사과는 없다. 합작 파트너 롯데가 연신 고개를 숙일 때 그 뒤에 숨어 비겁하게 숨죽이고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철저한 일본 기업이 사과 필요성을 못 느끼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일본 유니클로에 있어 한국은 '집토끼'다. 각종 논란에도 매년 성장가도를 밟았고 4년 연속 매출 1조원을 넘었다. 한국에서 단단히 자리 잡았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사실 이번 결산 설명회서도 한국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대부분의 질의는 중국 출점과 동남아·유럽 사업에 집중됐다. 그들에겐 '산토끼'인 중국과 동남아 시장이 우선이다. 같은 애정을 집토끼에 쏟진 않는다.
과거 욱일기 논란으로 불매운동이 일었을 때도 유니클로 성장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쩌면 그들 태도는 수차례 반복된 학습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과는 위기에 빠진 조직을 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화를 키우는 일도 있다. 핵심은 진정성이다. 과거에 비춰 그들에겐 침묵이나 무시가 정답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이젠 붉은 로고가 선명한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게 부끄러워졌다. 남들의 시선이 불매운동의 동력은 아니겠으나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할 순 없다. 나부터가 그렇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