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연구원(이하 에경원)이 '전기요금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배려계층이 아닌 1~2인 중위소득 이상 가구에만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관련 제도 폐지 의견을 개진한 건 처음이다. 연 3000억원 가량 손실이 불가피한 누진제 개편안을 받아들이면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를 정부에 요구한 한국전력 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에경원은 15일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소고(小考)' 보고서를 통해 “2016년 누진제 개편과 함께 도입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는 저소득층보다 전력사용량이 적은 1~2인 중위소득 이상 가구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일몰 시점을 명시해 일정기간 이후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별도 조치가 없는 한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경원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정부가 시행 중인 에너지 제도를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정부는 2016년 유례없는 폭염으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단행, 기존보다 전기요금이 증가하는 구간이 발생함에 따라 1단계(200㎾h) 사용 가구에 한해 월 4000원 요금을 깎아주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를 도입했다. 전기요금 할인에 따른 재원은 한전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에경원은 1단계에 해당하는 200㎾h 구간 전기요금(㎾h당 93.3원)은 이미 원가보다 훨씬 낮은 요금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를 위해 투입된 재원 3954억원 중 사회적 배려 계층에 돌아간 혜택은 1.9%(76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히며, 나머지 3879억원은 일반가구 전기요금 할인에 쓰였다고 설명했다. 월 4000원 할인 혜택을 받은 829만여 가구 중 중위소득 이상 일반가구가 98.1%에 달했다는 것이다.
앞서 한전은 여름철(7·8월) 전기요금을 가구당 1만원씩 할인해주는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누진제 완화로 인한 연 3000억원 가량 부담과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부담을 동시에 떠안을 순 없다는 게 근본 이유다.
그러나 산업부는 한전과 사전 협의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승일 산업부 차관도 전기요금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개편과 관련해 “필수사용공제 제도의 합리적 개선은 (제도를) 폐지하는 것과 다르다”며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에너지 업계에선 가구당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전력소비량만을 기준으로 월 4000원 전기요금 할인 대상을 결정하는 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부출연연까지 나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 의견을 개진한 것은 향후 정부 에너지 정책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한전 사장도 혜택을 받았을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제도”라며 “이제는 정치적 논리를 벗어나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에경원은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목적이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선별된 지원 대상에 한해서만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