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소방청이 내놓은 비상방송설비 성능개선 종합대책을 두고 업계에서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개선안이 사전에 비상방송설비 고장 여부를 가려내는데 허점이 있다는 것이 골자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관리자가 즉각적으로 이상 유무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종합대책, 화재 시 비상방송을 정상 송출하는 것이 목적
소방청은 지난 1월 전국 공동주택, 공장, 복합건축물 등에 설치된 비상방송설비에 적용할 네 가지 성능개선안을 제안했다. 소방청 '비상방송설비 성능개선을 위한 종합대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6만9398개소 설비를 대상으로 한다. 공동주택 1만3552개소, 복합건축물 1만3826개소, 공장 1만1419개소, 교육연구 6604개소, 근린생활 7329개소, 업무시설 3777개소, 기타 1만2981개소로 구분된다.
비상방송설비 설치 대상은 연면적 3500㎡ 이상, 지하층 제외 11층 이상, 지하 3층 이상 건축물이다.
소방청 종합대책은 비상방송설비가 화재 시에도 정상작동하도록 설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화재 시 단락(합선) 혹은 단선(전선 절단) 상황에서 화재 통보는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평소 관리가 소홀했거나 화재로 설비가 손상된 경우에도 화재 발생 상황을 정상적으로 전파해야 한다.
이 같은 '비상방송설비의 화재안전기준(NFSC 202)'을 통해 이미 명문화됐다. 제5조 제1호는 '화재로 인하여 하나의 층의 확성기 또는 배선이 단락 또는 단선되어도 다른 층의 화재통보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소방청이 종합대책을 추가적으로 내놓은 것은 지난해 하반기 소방청 국정감사를 통해 비상방송설비 허점이 공론화됐기 때문이다. 2017년 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같은 대형 참사로 화재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업계, 종합대책에 이견 “안전성 우려”
소방청은 네 가지 방안을 보자. 1안은 퓨즈(Fuse)를 각 층에 설치하는 것이다. 퓨즈를 통해 합선 여부를 검사한다. 네 가지 방안 중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 합선이 발생할 시 중앙방송시스템 전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방어할 수 있다.
2안은 1안과 같은 퓨즈 기반 방식이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탑재했고 R형 수신기에 동작 상태를 표시한다. 1안보다 진일보했다. 마찬가지로 합선 여부를 검사하고 합선으로 인한 시스템 손상을 방지한다. 1안에 비해 이상 유무를 사전에 감지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3안은 각 층에 앰프를 설치하는 것이다. 각 층에 앰프가 있기 때문에 단락과 단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화재가 난 층에 방송설비가 손상되더라도 다른 층에서는 정상적으로 비상방송을 송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안은 라인체커와 RX리시버, 이상부하컨트롤러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중앙 통제실에서 단락과 단선 여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관리자에게 통보한다.
업계는 퓨즈를 기반으로 한 방식은 안전성이 낮다고 우려한다. 퓨즈는 합선 때문에 발생하는 시스템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설치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 현장에서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단선에 대해서는 이상 유무를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단점이라는 평가다. 단락, 단선이 발생해도 이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1~4안 모두 규정에 어긋나는 방안은 아니지만, 일부 방안은 분명한 허점을 갖고 있다”며 “최근 일련의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 안전성을 우선시 한다면 단선과 합선 여부를 실시간으로 동시에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지가 접촉한 복수 설비, 시공업체 관계자 반응도 비슷했다. 한 관계자는 “1안으로 제시된 퓨즈 방식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안전성이 떨어진다”며 “3안 혹은 4안으로만 시공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비상방송설비는 소방점검 외에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다. 합선으로 퓨즈가 끊어진 상태더라도 직접 틀어보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만약 제품 이상이 발생한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청 “법적 하자 없다”
소방청은 종합대책에 법적인 하자는 없다고 밝혔다. 1~4안 모두 비상방송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되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락에 대한 대책으로 퓨즈를 제안했다는 게 소방청 관계자 전언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물리적인 손상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상황에서 단선은 발생하기 어렵다”며 “퓨즈 방식은 단선을 체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락에 따른 비상방송 시스템 보호 역할은 충분하다.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특정 방식이 유지관리상 불편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직접 비상방송을 틀어보고 설비를 점검해야 한다”며 “종합대책은 관계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성능개선안을 제안하는 차원이다. 특정 방식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관계인의 몫”이라고 부연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