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마트제조 혁신, 한국의 등대공장을 찾아서<1>한국 스마트공장의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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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조업의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 자료: 세계경제포럼(WEF)/맥킨지

한국의 '등대공장'은 '0(제로)'에서 출발한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세계에 알렸던 세계경제포럼(WEF)은 새해 글로벌컨설팅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와 공동 조사한 제조업 혁신 보고서를 공개했다.

WEF와 맥킨지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도입으로 세계 제조업 미래 길잡이로 불리는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 16곳을 언급했다.

2016년 WEF에서 언급되면서 사실상 세계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은 한동안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WEF는 올해 다시 한 번 등대공장을 통해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조공장을 소개하면서 제조 혁신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제조 혁신 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 요소로 연결성, 지능화, 자동화로 제안했다.

등대공장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해 공장 설비 교체를 최소화하면서도 공정 프로세스를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최소한의 자원 투입으로 궁극적으로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쾌적한 노동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전력 관리부터 공장 및 공정 자동화, 서비스 분야까지 포괄하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플랫폼을 개발, 적용했다. 생산·보수·에너지 사용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시각화하고 시스템을 통합해 유지·보수 비용 절감했다.

독일 지멘스는 중국 청두에 있는 스마트공장에 모든 부품과 재료·제품에는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각 생산설비에는 센서와 측정장치 부착했다. 이를 통해 수천만개의 정보가 연결되고 공장이 스스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세계 스마트공장의 길잡이로 주목받는 등대공장 중에 한국은 단 한 곳도 없다.

◇왜 스마트공장에 주목하는가.

'팽창사회'는 끝났다. 대량생산을 주도하던 공장 굴뚝에 연기가 꺼지고 있다. 더 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옮겼던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반도체, 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글로벌 제조 대기업도 수요 감소와 생산성 정체라는 벽에 부딪혔다.

세계는 팽창사회에서 인구감소, 고령화로 귀결되는 수요 감소시대를 맞고 있다. 공급과잉, 과잉부채, 양극화 등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이른바 '수축사회'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신의 책 '수축사회'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전환형 복합위기'라고 진단하고, 세계가 수축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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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 주요 기술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글로벌 밸류체인까지 흔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은 사회·경제구조 변화의 지렛대가 됐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이러한 전환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홍 전 사장은 “4차 산업혁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중후장대형 경제구조를 빠르게 소프트웨어형으로 전환시킨다”고 분석했다. 세계 공장이 뿌리채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공장은 단순히 제조업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대량생산 위주 공급자 중심 기업 시스템을 수요 절벽을 맞은 시장에 바꾸는 작업이다. 생산 프로세스, 경영까지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 구조가 디지털데이터를 기반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 자동화에서 공정 지능화, 제품과 서비스의 융합으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맞춤형, 소량생산 시스템에 적합한 스마트공장 도입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중소기업의 경우 매출액과 생산성이 각각 평균 20%, 3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제조업 변화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부른다. 급속도로 커진 컴퓨팅파워와 AI기술 중심으로 과거 IT솔루션 지원 위주 공장자동화 정책과는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했다.

대표적 산업정책이 독일의 인더스트리4.0, 우리나라의 스마트공장 보급정책이다.

◇한국의 스마트공장은 어째서 위기인가

각국은 이러한 수축사회,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신제조업 혁신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2014년부터 제조업 혁신3.0 전략 일환으로 201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민관 합동으로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스마트공장 도입 필요성에 대한 중소·중견기업의 인식은 매우 높아져 확산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선진국 대비 주요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분명하고 한편에선 제조업 역량 약화와 인력 및 일자리간 미스매칭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제조 기술 중 애플리케이션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SW), 플랫폼, 장비 및 디바이스가 초기단계이거나 외산제품 수입, 유통에 의존한다.

IT솔루션 도입 중심 정책은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퍼지게 했다. 스마트공장 솔루션을 도입하는 중소기업은 준비가 부족하고 공급기업은 영세한 규모와 운영인력 부족으로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또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대부분이 기초단계에 머물러 생산라인 지능화는커녕 자동화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기초정보는 생산정보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단계로 이를 통한 실시간 수집, 분석 시스템을 통해 생산공정을 제어할 수 있는 기업은 전체 도입 기업의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인 독일과 미국은 앞서 나가고 있다. 독일은 '데이터공장'이란 개념으로 제조혁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동화에서 나아가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사업모델 변화를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주영섭 고려대 석좌교수(한국공학한림원 제조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오랫동안 인더스트리4.0의 실체를 고민해왔던 독일은 이제 스마트팩토리란 말을 안 쓰고 데이터팩토리란 말을 쓰고 있다”면서 “대량생산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독일은 비즈니스모델을 바꾸는 것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바꾸는 단계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발국가인 중국도 해외기업의 스마트공장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제조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중국에 자리 잡은 등대공장은 5곳으로, 독일(보쉬, 지멘스)·덴마크(댄포스)·폭스콘(대만)이 중국에 최첨단 스마트공장을 구축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애플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으로 유명한 폭스콘은 '소등공장(light-off factories)'을 생산라인에 적용하고 있다. 공장에 불이 꺼지고 심지어 에어컨 등의 냉난방기구가 꺼져도 로봇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이다. 목표는 재고가 0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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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조업 위기와 일자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스마트공장은 어디서 기회를 찾아야 하나

등대가 안개와 암흑의 바다에서 방향제시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길잡이는 필요하다.

길잡이가 반드시 특정 기업이나 공장일 필요는 없다. 제조 혁신은 공장 변화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공장이 바뀌고, 기업이 변화하고, 서플라이체인(공급망) 전체가 달라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 제조업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첫 번째 등대공장은 새로운 산업플랫폼의 구축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제조업이 인건비와 노동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화 단계의 스마트공장은 당면 추진과제가 될 것이다.

스마트공장 도입은 무조건 능사가 아니다. 기업이 스마트공장을 구축할 때는 기업 스스로 위치는 물론 외부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과 인력과의 조화도 중요하다.

미국 최대 전기자동차 제조회사인 테스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몬트에 있는 공장에 완전 자동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인간 노동자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고 고백하면서 광범위하게 적용됐던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만했다.

우리 정부는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3만개 구축을 목표로 세웠다. 올해에만 약 3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4000개 스마트공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규모도 작년 대비 2.6배 커졌다.

우선 한국형 스마트공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공장 3만개 보급 사업은 애초 2025년까지 도달할 목표였다. 목표 달성 시점을 대폭 상향 조정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2015년부터 시작한 보급사업에 한국 제조업의 강점을 살린 정책 보완이 이뤄져야 새로운 제조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단순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은 수요기업과 공급기업간 불만으로 남은 과거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도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중소기업 등에서 개별적으로 스마트공장 솔루션을 개발하고 적용해 성공한 사례도 많다.

한국의 강점을 살린 새로운 스마트공장 도입 전략을 수립할 시점이다. 기술별로 선진국과 격차를 따라잡기 위한 개별연구는 기존 '패스트 팔로(Fast follower)'전략 수준에 머무른다.

새로운 한국형 스마트공장 플랫폼 구축으로 선진국도 하지 못한 '퍼스트무버(First Mover)'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 사업 한계를 벗어나 민간이 대규모로 참여·주도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생각이다.

업종별 제조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산업용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구축 아이디어도 검토해볼 만하다. 중소기업 지원 위주 공급기업 역량강화는 한계가 있다.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간과해왔던 디지털 노동문제의 부상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기존 생산인력을 디지털 노동으로 대체하는 과정에 대한 인력 재배치와 훈련, 경력개발 등 인적자원관리도 스마트공장 도입에서 중요한 화두라고 전망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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