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주 52시간 근로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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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두 학생이 있다. A 학생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하루 7시간씩 충분히 잠을 자고, 교과서와 학교 수업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최상위권을 유지한다. 반면에 학생 B는 노력형에 가깝다. 학원도 다니고, 잠자는 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 공부했다. 이런 노력으로 A와 대등한 성적을 유지했다.

새로운 학교 규정이 생겼다. 청소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모든 수험생은 야간에 공부하는 시간을 4시간으로 제한하며, 이를 어길 경우 내신 성적에 패널티를 주기로 했다. B는 성적을 내기 위해 A보다 많은 학습 시간으로 보충하고 싶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B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규정에 따르기로 했다. 다만 중간·기말 시험 기간에는 공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학기 전체로는 평균 공부 시간을 지킬테니 시험 기간에만 공부를 더할 수 없겠느냐고 문의했다. 학교는 B 학생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예외를 두면 수험생 건강을 위해 도입한 제도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B는 다른 억울함도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공부 시간을 똑같이 제한받지만 주변의 다른 학교 학생들은 공부 시간을 더 늘리는데 아무런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대학에 가려면 학교 내 경쟁만 있는 게 아니다. B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실력 차가 벌어질까 고민이 많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1년이 돼 간다. 오는 7월부터는 노선버스, 방송, 광고, 교육서비스, 금융, 우편 등 21개 예외 업종도 적용 대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면서 불필요한 야근이 줄고 삶의 질이 개선된 것은 순기능이다. 그러나 기업을 책임지는 경영진에서는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기업 성공 스토리에 단골로 등장한 '좁은 창고에서 밤새워 연구개발을 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말은 더이상 사용하기 어렵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성공하면 반칙이라는 논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기업·중소기업의 연구 메카로 꼽히는 서울의 강서구 마곡지구나 구로구 가산 G밸리도 이미 야근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업종이나 직무별 상황을 반영한 탄력근무제 역시 개선점을 찾지 못했다. 에어컨 회사는 여름에 바쁘고 보일러 장사는 겨울에 바쁘다. 일감 많을 때 일을 더 하고 한가한 때 휴식을 더 취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급여나 총 노동 시간에도 영향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탄력근무제를 너무 열어 두면 '고용 확대'라는 기회가 사라진다며 미온적이다. 일이 일시적으로 몰리는 회사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력 채용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같이 고용 유연성이 극도로 낮은 사회에서 한때 쓰려고 최소 수년간 책임져야 할 인력을 추가로 뽑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산업 경쟁력도 함께 고려할 대상이다. 시간은 분명히 기업 활동의 핵심 자원이다. 해외 경쟁자는 연구개발(R&D)과 생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데 우리 기업은 시간 제약을 받는다면 비교우위에 서기 어렵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한다는 기업까지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안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제도 시행 1년을 맞아 과실을 따져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들었으면 좋겠다. 또 다수가 공감하는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합리적 제도 보완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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