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책임(R&R)'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1단계를 마쳤다. 출연연 특성에 맞춰 8개 중점 분야를 정하는 등 밑그림을 그렸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선 작업과 맞물려 지난 1년 동안 출연연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로 꼽혀 온 일이다.
추진 과정에서 논란도 많았다. 정부로부터 내려오는 톱다운(하향) 방식에 익숙해 있던 출연연에 보텀업(상향) 방식의 기관 재설계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R&R가 인력과 예산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불만도 제기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마찬가지였다. R&R 재정립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출연연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자칫 과기정통부가 세부 의견을 내면 출연연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마지막까지 기관이 자율적으로 합의에 의한 R&R를 도출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R&R가 나왔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R&R를 재정립하는 것만으로 출연연의 발전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R&R 내용에 맞춰 각 기관의 연구 방향 설정, 인력 운용, 내부 문화 개선 등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마련·시행해야 한다. 출연연마다 단기 또는 중장기 차원에서 명확한 계획을 세워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뚜렷한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출연연의 새로운 미래 설계를 도와야 한다. 정해진 원칙을 지킨다면 또 한 번 불거질 예산·인력 조정 논란도 현명하게,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출연연의 미래는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잊을 만하면 출연연의 경쟁력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그만큼 출연연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출연연의 R&R를 다시 세우는 일이 출연연의 미래를 밝게 하는 작업으로 작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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