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표현이지만 직전까지 “(경제 상황이) 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직 아니다”라고 천명하던 것과 대비된다.
그만큼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P) 하락하면 우리 수출 증가율은 1.6%P, 경제성장률은 0.5%P 각각 하락한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2%로 낮아지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는 2.0%까지 낮아진다는 얘기다.
이 총재가 지난 4, 5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때 너무 낙관적으로 진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초 기대와 달리 반도체 경기도 당장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특히 1분기 성장률이 -0.3%를 찍은 만큼 이를 만회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적어도 분기별 플러스 성장률이 이어져야 당초 전망치를 맞출 수 있지만 올해는 1분기부터 엇나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8일 발표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짙어졌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이후 이어 오던 금리 동결 기조를 깨고 올 4분기께는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최근 청와대의 경기 관련 발표 기조가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그 정도로 우리 경제의 하방 위험이 크다는 신호다.
문제는 현재 또는 미래의 경제 상황이 우리나라의 통제 범위를 넘어선 요인이 크다는 점이다.
역시 가장 큰 것은 미-중 간 무역 전쟁이다. 두 강대국 간 패권 전쟁이 단기간에 마무리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나 경제 의존도를 볼 때 직접 미치는 영향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지만 국내 상황을 돌아보면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다.
특히 여의도 쪽은 쳐다보기도 싫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시급한 개혁 입법은 물론 각종 민생 법안, 경제 위기에 긴급 투입할 추가경정예산까지 모두 발목이 잡혀 있다.
실제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회가 공전되면서 20대 국회 의안 본회의 처리율이 30%를 밑도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의안은 445건에 그쳤다. 대한민국의 입법 기능이 사실상 멈춰 선 것이다.
국가 권력을 3개로 나눌 때 사법부는 과거를 단죄하고, 행정부는 현재를 이끌며, 입법부를 미래를 설계한다고 했다. 현재의 국회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멈춰 선 셈이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추가 시설 투자를 위한 공공자금을 신청했지만 추경이 통과되지 않으면 해당 기관에서 자금 집행을 하지 못한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민생이나 국가적 경제 위기 상황에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이념 갈등과 아픔을 그려 온 소설가 조정래씨가 최근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한 신작 '천년의 질문'을 출간했다. 조씨는 신간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의 잘못을 질타하면서 그 절반의 책임은 감시 감독을 잘못한 국민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일단 상당수 국민은 절반의 책임을 통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치권은 어떨까?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