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에서 익숙한 제도 가운데 '일학습병행제'라는 것이 있다. 정부 지원 사업에 기반을 둔 제도이다 보니 대학마다 운영 여부와 방식에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은 대학 재학 중에 기업에서 '실무 중심 현장훈련'(OJT) 과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대학과 기업의 눈높이를 맞추고 대학 교육 과정에서 자칫 부족할 수 있는 실무 수행 능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시행됐다. 실상 독일·스위스 같은 나라에서는 흔한 도제식 훈련제도를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으로, 대학에서 이론에 기반을 둔 현장외훈련(Off-JT)을 받고, 기업 내 현장교수가 실무훈련을 운영하는 형식이다.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해 양질의 실무 중심 교육을 받기 어려운 대학 여건과 중소기업이 많은 우리나라 환경에 꼭 필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학습병행제 운영에는 논란거리가 하나 있다. 실상 이 제도는 훈련이 종료되면 평가를 거쳐 국가기술자격에 준하는 자격을 수여함으로써 기존 노동 시장에서 운영되고 있던 자격과 통용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그러나 기존 자격제도와 동일한 자격을 주는 것에 전문가 간에도 이견이 있다. 주무 부처에서조차 자격제도를 나눠 맡은 부서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바람에 정작 시행은 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까지 모두 합격해 놓고도 자격증 대신 수료증만 받아 언제 자격으로 전환될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 하는 학생에게는 당황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 지난 3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산업현장일학습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일학습병행제의 사회 통용성을 확보하고 그에 상응하는 자격과 연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심으로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3개년 기본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은 이 제도의 약속을 믿고 일학습병행제에 성실히 참여한 대학이나 특성화고 재학생에게 실망스런 결과를 전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함께 일학습병행제란 신제도 운영을 국가기술자격에 국한시켜서 논의하는 것은 이 제도의 잠재성을 제약하는 것이자 행정 편의 사고일 수 있다. 독일권에서 운영되고 있는 도제제도가 우리 제도 운영의 모범은 될 수 있지만 이것이 기준이자 제약이 돼서는 안 된다. 일학습병행제 대상이 주로 젊은 청년인 만큼 현재 우리 사회의 산업 및 직업 구조를 기준으로 삼되 미래에 적용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기회로 두 가지 더 정책 숙려를 했으면 한다. 첫째 미래 우리 노동 시장에서 적절한 자격제도를 한번 백지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학습병행 자격을 국가 자격으로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노동 시장에 필요한 지식과 숙련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펼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둘째 일학습병행제 운영에서 자율에 따른 선택 기반으로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숙의 과정에서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란 이분법에 생각을 가둬도 안 된다. 일학습병행제의 취지에 상응하는 자격 연계 방안을 마련하되 자칫 기존 자격과 통용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일학습병행제를 운영하는 대학과 참여하는 학생에게 선택지가 열려있는 유연한 제도 설계는 필수다. 기존 자격제도에 일학습병행제를 끼워 맞추는 대신 이 신제도가 잘 기능하도록 자격제도를 재설계하는 것이 이 제도를 100% 활용하는 원칙임이 분명하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
이호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