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꽉막힌 대학 혁신의 길, 출구는 없나

교육부가 이르면 이달 말 고등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한다. 크게 재정 확보 방안과 규제 혁신 방안을 담는다. 교육부는 올초부터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혁신방안을 준비했다. 학령인구 감소, 등록금 인상 제한, 규제·평가 강화 등 대학이 겪고 있는 '3중고'를 해소하고 사회 변화에 맞춰 혁신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달 말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를 전후해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의 정부재정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정부 정책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을 고등교육 혁신방안에 따라 대학이 혁신의 길을 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종합적으로 내놓는 첫 혁신방안이라고 해도 정책의 한계는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수십 개 대학이 문을 닫을 처지에 있는데 방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국민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의 요구대로 등록금 인상을 허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등록금을 올릴 수도 없고 폐교도 어렵고 정원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로 당장 입학 정원 채우기도 어렵다”면서 “고등교육 혁신 방안의 답이 안 보인다. 교육부도 꺼낼 카드가 몇 개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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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고' 겪는 대학, 혁신 동력 조차 없어

매년 수험생은 5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이는 곧 대학의 심각한 재정난으로 이어진다. 6월 모의평가에 지원한 수험생은 54만183명으로, 전년 대비 5만2191명이 감소했다. 졸업생 등 수험생이 2000여명 늘어났으나 재학생 지원자 숫자가 5만4326명이 줄어든 결과다. 교육부는 현재 대학 입학 정원 49만명이 유지될 경우 2021년에 전국적으로 약 5만6000명 정원 미달을 예상했다. 교당 평균 정원(일반대 1650명, 전문대 1250명)을 고려했을 때 38개 대학에 해당하는 수치다. 숫자대로라면 38개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대학 등록금 평균은 670만원이다. 대학 재정적인 측면에서 5만6000명을 곱하면 연간 3752억원의 재원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된다.

해마다 사정은 더 심각해진다. 2023년에는 9만9000명 정원 미달이 예상된다. 학생이 줄어든다고 비용을 그만큼 줄일 수도 없다. 학생이 줄어든다고 교직원을 비례해 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 대학은 이런 상황을 들며 줄기차게 등록금 인상을 요구했다. 지난 10년 동안 등록금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정부 내에서 '등록금 인상'은 금기어다. 일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비난을 감내할 의지는 없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등록금 인상을 감행할 정부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전망이다.

대신 정부는 재정 투입을 늘리고 있다. 2005년 교육부 고등교육 예산은 3조5600억원에서 2015년 6조68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다시 감소했다가 조금씩 증가해 2019년 예산은 6조800억원으로 확대됐다.

6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는 만큼 정부는 공정하고 까다로운 '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없는지 감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학비리에 사립대학도 에듀파인 등 회계시스템으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평가와 감사는 대학에게는 규제로 다가온다.

◇혁신은 남의 나라 이야기

3중고에 시달리는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혁신동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대다수 대학이 구성원조차 혁신의지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지만 대응도 쉽지 않다. 해외에서는 사회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학과를 만들거나 통합하는 일이 잦지만 국내에서는 새로운 과를 만들기조차 어렵다. 정원 제한이 있어 기존 과를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새로운 과를 개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통합도 마찬가지다.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르면 통합되는 대학 정원의 60%(3년제 40%)를 줄여야 한다.

해외 미네르바 대학, 애리조나주립대학 등이 국내에서도 혁신 성공 사례로 회자된다. 미네르바 대학은 캠퍼스 없이 7개국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며 학생이 현장을 경험하는 구조다. IT를 활용해 수업 참여도를 높여 하버드대학보다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애리조나 주립대는 10년 동안 69개 학과를 폐지하고 새로운 융합전공을 만들었다. 기존 학과나 단과대학 중심 학사 체제를 해체했다. '물부족' 학과처럼 미래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세계 단 하나 뿐인 학과를 개설했다.

국내 대학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손사래를 친다. 한 대학 총장은 “종합대학은 자체 규모 때문에 이 같은 혁신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획일적인 대학 평가에 맞춰야 하는 마당에 캠퍼스 같은 시설을 없앨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이 혁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이클 크로우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한몫했다. 총장이 10년 이상 재임하면서 끊임없이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국내 직선제 대학에서는 힘들다. 교수의 반발을 이겨낼 운영진은 몇 되지 않는다. 1학년 교양 수업을 MOOC로 상당수 대체하는 해외 사례는 국내 평가 체계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다.

◇출구는 없나…규제 틀 과감히 바꿔야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의견에 대학이나 교수, 정부 모두 공감한다. 정원 미달된 대학은 스스로 도태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수도 있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하면 수도권 주요 대학만 살아남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방에서는 신입생 선발이 아닌 정원을 채우기 위한 '모집'을 하는 대학이 많다. 정부가 대학기본역량진단을 바탕으로 정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으나 감축해야 할 숫자의 절반도 제시하지 못한다.

현 규제 틀에서는 혁신을 감행하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차별화된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1주기 대학 평가에서는 일괄적인 정원 감축을 시도했으나 2주기에서는 자율개선대학에 들지 못한 대학만 정원 감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국내 사립대 등록금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그 이상 투자를 하는 대학에게는 등록금 인상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차별화된 규제와 평가 방법을 정부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되 다른 꼼수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지난해 유학생 등록금 인상 길을 열어준 후 유학생 관리는 부실한 채 유치에만 혈안이 된 것이 한 예”라고 지적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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