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기반 해외 송금 기업은 최근 자금 입출금 실태를 점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갑자기 금융감독원에서 소액 해외송금업 실태를 점검하겠다며 현장조사 공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첫 현장 조사다. 일일장부를 모두 조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해외 사업 확장도 뒤로 미뤘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가 부처 협력을 통해 해외 송금 한도를 풀고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 사업이 활력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달된 금감원의 강도 높은 현장 조사 통보에 업계는 위축됐다.
#정부 용역을 받아 온누리상품권 디지털 사업을 준비해 온 한 중소기업은 사업 자체를 접을 위기에 놓였다. 갑자기 정부가 온누리상품권 디지털 사업을 제로페이와 연동, 금융사에 사업권을 내줬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 하반기에 제로페이 운영법인(SPC)을 만든다. 재원 마련에 제로페이 참여 금융사의 협조는 필수다. 이를 위해 온누리상품권 디지털 사업권을 은행에 독점 제공했다는 것이다. 결국 관련 사업을 준비하던 기업은 별도의 간편결제 단말기까지 만들었지만 정부 말만 믿고 있다가 위기에 빠졌다.
엇박자를 내는 정부의 '혁신 성장' 정책에 기업의 한숨이 늘고 있다. 금융, 바이오, 블록체인, 빅데이터, 온·오프라인연계(O2O) 등 미래 신사업 현장 곳곳에서 부처 엇박자와 설익은 정책이 난무하며 오히려 기업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통일된 원칙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이 주무 부처별로 다른 내용이 발표되고, 세부 이행 계획까지 뒤엉키고 있다. 산업군별 혁신기업 육성계획도 부처별로 따로 수립돼 해당 기업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한다. '잡탕성장'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금융이 대표적이다. 전통 금융기관의 독점 사업인 해외 송금 시장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 해외 송금 스타트업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로부터 공식 라이선스(인증)를 받았지만 중기부로부터 투자금지 기업으로 분류돼 투자를 받지 못했다. 결국 부처 혼선으로 야기된 규제는 법 개정을 통해 겨우 해결됐다. 그러나 최근 금감원이 현장조사를 통해 불법 송금이 있었는지 등 외국환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제로페이도 엇박자 대표 사업이다. 사업 추진 주체인 중기부와 서울시 간 따로 국밥식 사업 추진으로 한동안 업체는 혼란을 겪었다. 혁신 결제 수단이라는 취지는 사라지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QR 결제 중심으로 결제 수단을 몰아가면서 오히려 다른 간편 결제 시장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불러들이고 있다.
제3 인터넷전문은행을 추진한 키움뱅크, 토스뱅크의 인가 불발을 놓고도 혁신 성장 취지를 역행하는 '정부의 자책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심사에서는 혁신성보다 자금 조달 능력과 리스크 방지에 주안점을 뒀다. 혁신성을 외쳤지만 실제는 기존 잣대로만 평가한 셈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정책도 '무늬만 혁신'이라는 여론이 짙다. 정밀의료 구현의 핵심인 '의료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에 묶여 여전히 활용이 제한됐다. 선진국에서 고령화 대응, 건강관리를 위해 장려하는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검사도 국내는 12개 항목만 허용한다. 정부가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시범 사업 기간에만 57개로 확대했다. 법 개정은 효과를 검증한 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현 정부의 혁신 성장 정책이 마치 지난 정권들이 추진한 창조경제, 녹색성장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