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리콘밸리는 마법처럼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았다. 100여년에 걸친 탄탄한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꽃을 피웠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전기공학과 양자물리학이 발전했고, 20세기 초 샌프란시스코 전자기술로 첨단 기술이 발전했다. 이 덕분에 실리콘밸리는 위기를 겪어도 극복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2000년대 초에 일어난 닷컴 거품의 붕괴와 2008년 경제 불황 이후에도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세계 첨단 기술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도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탄탄한 기초체력을 다졌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는 그동안 기초과학에 집중하면서 내공을 길렀고, 수많은 우수 인재도 배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울대 주변에는 실리콘밸리 같은 스타트업이 없다. 창업을 원하는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대가 소재하고 있는 관악구가 아닌 경기도 성남시 판교 등 다른 지역에 자리 잡았다. 불편한 접근성, 낙후된 인프라 등 창업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
서울대와 관악구가 힘을 모았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손을 잡고 낙성벤처밸리 조성을 추진한다. 10년 동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 온 낙성벤처밸리 사업이 현실로 한 걸음 내디뎠다. 난관이 없지는 않다. 서울대 후문에서 낙성대 일대는 녹지가 많아 건물을 짓기 어렵다. 서울시가 용도 변경을 해 줘야만 가능하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진행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천리 길을 가는데 겨우 한 걸음을 뗀 것인지도 모른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10년 동안 주저해 온 첫발을 내디뎠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책임자의 결단력에 박수를 보낸다. 성공한다면 서울대 인근 지역은 낙후 지역 이미지를 벗고 국내 산업을 이끌어 가는, 첨단 기술이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변모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UC버클리, 스탠퍼드대, 새너제이주립대 등 명문대와 세계 수준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 연구소, 기업 간 긴밀한 교류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기술 문화를 발전시켰다. 다른 지역의 인재가 실리콘밸리로 유입되는 선순환 효과까지 이어졌다. 낙성벤처밸리도 대학, 연구소, 기업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지역으로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