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커지는 주주권, 기업 건전성 확대 계기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주주 반대로 20년 만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국내 재벌 총수가 본인 뜻과 무관하게 주주 손에 의해 물러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바둑에서 쓰는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말은 그동안 재계에서도 통했다. 재벌가, 대기업 오너는 정치인이나 정부 주요 관료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우위에 선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다. 한때를 풍미하는 이들과 달리 대기업 오너는 사실상 무한한 권력을 갖는다는 점을 빗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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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이번 조 회장 연임 실패가 우리 기업사에서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향후 기업 환경 전반에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대주주 이외에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던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가 확실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위력이 확인된 사건이다. 대기업 오너는 그동안 지주사 성격 계열사의 작은 지분으로도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장악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향후 대주주 일가도 얼마든지 제약을 받는 시대가 열렸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말하는 '스튜어드십코드'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 꾸준히 확대일로에 있다. 일부 외국계 펀드의 요구가 나오는 것을 넘어 국민연금이 2018년부터 제도를 도입했다. 국민연금은 이번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 회장 연임에 반대 의견을 내며 존재감을 내보였다.

무엇보다 주주행동주의 확산을 우리 기업의 건전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은 땅콩 회항, 갑질, 밀수 등 총수 일가의 각종 전횡에 대한 엄중한 경고 성격이 있다.

앞으로 기업 평가에서 총수나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성과는 기본이 될 것이다. 투명한 경영원칙, 주주친화적 정책,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요구가 확산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존경받는 기업인, 중소기업이 칭찬하는 대기업이 적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주주 권한 확대를 계기로 우리 대기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더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선대를 이어 새로운 총수 일가가 우리나라 경영 최일선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바뀐 시대에 맞는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춘다면 산업 발전과 국격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주권 남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회사의 장기적 성장엔 무관심한 주주의 무리한 요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최근 현대차 주총에서 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과도한 배당요구를 한 바 있다. 책임감 없는 주주는 언제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제안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반대하는 주주를 설득하는 것이나 반대파를 제압할 안정적인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노력 역시 오롯이 대주주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주주 친화 정책과 투명한 리더십이 더욱더 필요할 것이다.

주주행동주의가 건전하기 위해서는 '큰손'으로 떠오른 국민연금 역할도 더 명확해져야 한다. 주주로서의 이익과 국민 여론이 엇갈릴 경우 국민연금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또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확실한 장치가 있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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