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세먼지 문제가 국가적 현안이 됐다. 수도권에는 사상 최장의 연속 비상저감 조치가 내려졌고, 5일 오전 서울 초미세먼지 농도는 ㎥당 178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20일부터 따지면 2주째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거의 전국에 걸쳐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시행됐다. 수도권은 6일까지 엿새 연속이다. 이 같은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는 2017년 도입 이래 처음이라고 하니 사안이 녹록하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 미세먼지가 더 기승을 부리는 데는 기상 상황도 한몫했다. 우선 눈·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데다 대기 정체로 인해 평균 풍속도 예년에 비해 느려졌기 때문이다. 올 겨울엔 북서풍이 약해지면서 편서풍을 타고 유입되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늘었고, 한반도 상공에 머무는 기간도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한편으로는 이번이 좀 특이한 경우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방위훈련 사이렌을 연상시키는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기를 울리는 '안전 안내 문자'를 매일같이, 그것도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에다 교육청까지 번갈아 며칠째 받는 불안감을 앞으로 일상처럼 겪어야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 5일 한 뉴스통신사에서 정리한 주요 신문 사설 10건 가운데 2건 꼴로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를 다루고 있고, 담당 부처의 안일한 대응이나 인식을 비판하는 주장부터 지난달 15일 발효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 특별법'이나 비상조치를 통해 감축 가능한 미세먼지가 전체 5% 남짓밖에 안 되는 만큼 더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이미 넘쳐나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상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대책은 무엇인지 따지는 과정에서 몇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우선 어느 순간부터 중국발 스모그와 미세먼지를 당연한 명제처럼 인식하게 됐냐는 점이다. 지난달 26일 한·중 양국 환경부 장관이 회담했지만 결과는 원칙적 협력 방안 확인에 그쳤다. 중국에 구체적 대책을 요구하기에 과학적 연구 결과와 객관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설명으로 마무리하는 모양새다. 환경부가 이런 자세를 견지하는 동안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한두 해 된 문제도 아닌데 이런 준비 부족을 환경부가 아닌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환경부와 그 장관이 해명에 바쁜 동안 다른 정부 부처의 안일한 대응도 납득하기 어렵다. 사안의 주무 부처가 환경부이긴 하지만 미세먼지 위협과 관련 없는 부처가 없는 만큼 나름대로 대안 마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어느 부처는 지난해 2월 미세먼지 범부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소관 기관을 국민 대표와 함께 방문해 미세먼지 저감 방향 토론회도 열었지만 정작 이번 상황을 맞아선 그 사이 이런저런 진전이 있다는 홍보 자료만 내보내는 정도로 적극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상저감 조치며 초미세먼지 경보를 발령하는 것으로 역할을 정리한 듯 보이는 환경부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한번 자성해 봐야 한다. 외국 방문객에게까지 무작위로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는 친절한 행정 뒤에 정작 마스크를 착용하라거나 어린이·노약자 등은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며칠째 보는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할지에 정녕 관심이 없는 것인지, 대책 마련에 너무 바쁜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기회도 있다. 한동안 국민 일상에서 잊혀 있던 환경부에 국민과 공감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진정 공감을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
이호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