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업체간 담합이 적발된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입찰 사건'에서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담합 원인을 일부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주장 등을 반영해 담합 업체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는 'ERP 시스템 입찰 담합 사건'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발주처인 한수원이 우리에게 유찰 방지를 요청했다”는 피심인(메타넷인터랙티브) 측 주장 등을 반영해 제재 수준을 결정했다.
한수원은 2014년 3월과 4월 각 1건씩 ERP 시스템 구축 사업을 발주했다. 메타넷인터랙티브와 에코정보기술이 해당 입찰에 참여하며 낙찰예정사, 투찰가격에 합의했다. 메타넷인터랙티브가 단독 입찰에 따른 유찰 방지, 고가 낙찰을 위해 에코정보기술에 들러리를 요청하면서 이뤄진 담합이다.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메타넷인터랙티브는 담합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한수원 요청을 반영한 '소극적 담합'임을 강조했다. 발주처인 한수원이 메타넷인터랙티브에 “유찰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고려해 담합을 추진했다는 주장이다. 한수원은 사업일정 지연 등을 고려해 메타넷인터랙티브에 유찰 방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조사관이 상정한 심사보고서(검찰의 기소장에 해당)에 해당 내용이 반영됐다. 메타넷인터랙티브 측도 심의 과정에서 이를 고려해줄 것을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원들은 이런 정황과 담합에 따른 경쟁제한성이 비교적 낮다는 점 등을 반영해 공정위 조사관 의견보다 제재 수위를 낮춰 두 업체에 과징금 총 3100만원을 부과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안을 '관제담합(官製談合)'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관제담합은 공공부문 발주처가 입찰담합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수원 측은 유찰 방지를 요청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수원 측은 “담합이 의심된다는 판단이 들어 직접 신고한 사안”이라며 “공정위 의결서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의결 됐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