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에 입점한 A수산에서 구매한 생선이 부패됐다고 노량진 수산시장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법안(개정안)대로라면 노량진 수산시장,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은 입점한 모든 물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 e커머스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개정안이 오픈마켓을 비롯한 통신판매중개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통신판매중개 업계는 자사 채널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비유하며 이해관계자 목소리가 개정안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정안 핵심은 소비자가 통신판매중개업체 판매 채널에서 피해를 봤다면 실제 판매자가 아닌 중개 플랫폼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예컨대 오픈마켓에서 구매한 신선식품을 먹은 소비자가 배탈이 났다면 고기 판매업체가 아닌 오픈마켓이 배상해야 한다. 오픈마켓은 물론 모바일 배달 주문 애플리케이션(앱), 숙박 예약 사업자까지 적용 대상이다.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쇼핑 관련 가격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업자와 각종 쇼핑 광고 서비스를 노출시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규제 사정권이다.
e커머스업계는 소비자 보호라는 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성이 결여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플랫폼 기반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도 역행한다는 점 때문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다수 온라인 플랫폼 업체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소사업자 입점 기준을 높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까다롭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는 온라인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과 경력 단절자, 전자상거래 경험이 적은 중소기업에 큰 타격이다. 인기 상품을 보유한 판매자라 해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즉각 퇴출을 감수해야 한다.
그동안 e커머스 산업을 이끌어 온 온라인중개 사업 위축도 불가피하다. 판매 상품에 책임을 지는 통신판매업자 같은 수익 모델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판매자와 소비자를 이어 온 중개 채널은 단순한 중간 유통 단계로 전락하게 된다. 입점을 품질 검사 등에 지불해야 하는 판매자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곧 판매 가격에 반영된다. 소비자와 판매자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셈이다.
소비자 피해 원인을 제공한 제조사나 서비스 제공사가 아닌 중개업체에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손해 배상을 포함한 모든 법 적용이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감안하면 개정안이 법리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개 채널이 아닌 판매자가 대부분 수익을 가져가는 플랫폼 특성을 간과한 법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전년 대비 22.6% 증가한 111조8939억원이다.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서며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업계는 개정안에 명시된 과도한 책임이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토로한다.
새로운 법과 규제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개정안의 취지 핵심은 소비자 보호다. 입법기관과 전자상거래 업계가 충분한 협의와 검증, 합당한 절차를 거쳐 최선의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 소비자 피해 방지와 전자상거래 시장 활성화 모두 놓칠 수 없는 과제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윤희석 유통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