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획재정부가 후원하고 한국개발연구원이 주관하는 사업 가운데 '경제발전경험 공유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전문가 사이에 KSP로 줄여 부르는 이것은 우리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축적한 성공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일종의 경제협력 사업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개도국 사이에선 제법 잘 알려진 사업인 이것이 관심 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내로라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협력국에 맞춤화된 사례를 제시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어느 개도국도 거부하기 어려운 성공 경험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실상 '외국 나가면 누구든 애국자가 된다'는 말도 하지만 이 사업에 참여해 보면 개도국이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경제 위상이 어떤지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진부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개도국 입장에서 우리 경제를 한번 바라보자. 우선 한국은행 통계를 기준으로 2016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4112억달러로 세계 11위였다. 이것을 1953년과 비교하면 무려 1085배나 성장한 셈이라 한다. 또 워낙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1956년 수출 규모가 2500만달러였고 지난해 수출액이 6055억달러이니 이것으로 어림잡아 2만4000배 늘어난 셈이다.
우리 자신이 따져 봐도 믿기 어려운 이런 수치를 보는 개도국 담당자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이런 성공 경험이 어디서 왔을지 궁금한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사업을 수행하다 보면 한 가지 의아한 점도 생긴다. 개도국에서 이처럼 놀라워하는 우리의 성공 경험을 정작 경제 수치를 제외하면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이만한 수준이 됐으니 힘을 앞세운 외교와 무역 정책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한류라는 또 하나의 강점도 있는 만큼 호혜적이고 공감에 기반을 둔 교류에 방점을 두는 것이 나쁠 게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하면 외국에서 보는 우리 영향력은 경제 수치로 나타난 위상과 사뭇 차이가 나는 듯하다. 정작 우리 기업의 입간판은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체감할 수 있는 국가 브랜드만큼은 한참 못 미치는 느낌이다.
우리가 경제 위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은 국가 브랜드를 생각할 때가 분명 됐다고 본다. 기업 브랜드가 국가 브랜드와 명성을 이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국가 브랜드가 기업이 시장을 개척하고 시장 신뢰를 얻는 데 앞서가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알리앙스 프랑세즈'라는 프랑스 어학원이나 '괴테 인스티튜트'라 불리는 독일 문화원을 보며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이 탓이다. 실상 주한 프랑스 문화원은 서울 한 곳이지만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서울, 인천, 대전, 전주, 대구, 광주, 부산 등 일곱 곳에 있다. 주한 독일 문화원도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다섯 곳에서 독일어 강좌, 문화 행사, 독일어 능력시험, 도서관을 운영한다.
이제는 우리의 경제 위상과 성공 경험을 자랑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분명 한 국가의 영향력과 경제력에는 다름이 있다. 시내에 보이는 우리 기업의 뿌듯한 광고판과 함께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 문화는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서 맥을 잡아 시작하면 된다. 우리 경제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 것이 잘못된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단지 이런 위상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매번 분명해 보인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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