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지능형 로봇 산업에 있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다. 향후 5년간 지능형 로봇을 육성하기 위한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 정부도 로봇산업 성장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 올해가 지능형 로봇 산업 성패를 가를 수 있는 '골든타임'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지능형 로봇 산업에서 도약하기 위해 시장 수요 창출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지난해 규제 완화와 지원체계 마련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올해부터는 기존에 로봇을 쓰던 곳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으로 로봇 보급을 확대, 시장이 창출돼야 한다. 작업장마다 로봇 활용을 설계할 시스템통합(SI) 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로봇 기술 개발과 기업 실무를 책임질 인재 양성도 시급하다. 지능형 로봇은 하드웨어(HW)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SW)와 융합이 필수다. 국내 고급 인력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국내 로봇기업에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기업, 기관, 학계 전문가 10인이 참가했다.
◇규제 완화 더 필요, “SI 통한 현장 적용 확대 절실”
지난해는 로봇 산업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만든 해였다. 일몰 위기에 놓였던 '지능형 로봇법'이 2028년까지 연장, 로봇산업 정책 근간이 마련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나서 협동로봇이 펜스 없이 설치돼 인간과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진흥원이 직접 안전인증 기관을 맡아 협동로봇 도입을 위한 기업 애로사항을 해소했다.
전문가들은 지능형 로봇 시장 활성화를 위해 영역별로 이런 규제 완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친화도(규제) 항목은 10점 만점 중 평균 4.8점을 기록, 평가 점수가 가장 낮았다.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존 제조업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 영역으로 로봇이 확산되려면 다양한 부처에 얽혀 있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전문가 10명 가운데 7명이 4차 산업혁명 준비에 있어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항목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위한 시장 여건 조성'을 꼽았다. 규제 완화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국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국내 현장 수요 확대는 우수 사례를 수출, 글로벌 진출까지 이어지는 초석이 된다.
정부도 지난해부터 사회적 약자 대상으로 반려로봇, 배설케어로봇, 이송지원로봇, 식사보조로봇 상하지보조로봇을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공영역만으로는 시장 확대가 제한적이다.
특히 다양한 산업 작업장에 로봇 활용이 극대화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통합(SI) 기업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봇은 '동작'을 만들지만 이런 동작을 활용해 실제 '공정'과 '작업'을 설계하는 것은 SI업체 몫이다. 하지만 역량 있는 로봇 전문 SI업체 수가 많지 않아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진오 광운대 교수는 “국내에는 역량 있는 로봇 전문 SI업체 수가 많지 않아 기업이 작업장에 로봇을 도입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면서 “지나친 가격 인하 등을 지양하는 등 SI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경철 KAIST 연구교수는 “단순 SI기업 확대뿐만 아니라 이들이 충분히 국산 로봇을 검증하고 현장에 반영할 수 있도록 연계돼야 시장 확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빠져나가는 인력 붙잡고 인재 양성할 특단 대책 필요
설문조사에서 국내 지능형로봇 기술 수준은 평균 6.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문가 10명 중 7명이 7점 이상을 매겨 시장 진입을 위한 바탕은 마련된 것으로 평가했다. 기업 준비도도 평균 6.1점으로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력 확보와 기업 활동 지속 바탕이 되는 인재 확보가 비상이라고 진단했다. 지능형 로봇 관련 인력 풀과 교육 수준을 평가하는 '전문인력' 항목은 평균 5.1점을 받아 두 번째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우수 기술 확보 토대가 되는 고급 인력이 해외로 이탈하고, 산업현장에서 엔지니어 확보도 쉽지 않아 향후 로봇 산업 지속 성장에 큰 장애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임성수 경희대 공대 학장은 “연구계를 비롯해 현장에서도 로봇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과 인력 확보를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지능형 로봇은 기계공학뿐만 아니라 AI까지 익힌 고급 인재가 필요한데 이들이 근무 여건이 좋고 규제가 약한 해외로 가고 있다”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환경 조성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상반기 마련될 '제3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이 이런 과제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계획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국내 로봇산업을 진흥할 로드맵이 된다. 이미 지난달 계획 수립을 위한 '로봇 포럼'이 공식 출범해 논의를 시작했다. 포럼은 △금융지원 △지능형 로봇법 정비 △인프라 구축 △로봇 활용 서비스개발 △기술로드맵 △인력양성 △글로벌화 등 7개 워킹그룹(WG)으로 구성됐다.
<고경철 KAIST 연구교수 "지능형로봇 골든타임, 강력한 컨트롤타워 마련해야">
“지난 10년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능형로봇 산업을 육성해 양적 성장은 이뤘지만 세계 시장에서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정책을 뒤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을 검토해야 할 때입니다.”
고경철 KAIST 연구교수는 지능형로봇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난 10년을 거울 삼아 향후 10년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능형로봇법이 제정된 2008년부터 10년 동안 정부가 집중 투자했지만 성과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업 측면에서 독일, 일본 등 선진국과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뒤에서는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각종 연구개발(R&D)이 활발히 이뤄졌지만 실제 산업으로 기술 이전 성과는 미미하다.
고 교수는 “생태계나 기반이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오지 못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로봇 기업이 나오긴 했지만 많지 않고, 여전히 해외 주요 기업이 기술 격차를 유지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새해가 지능형로봇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일몰 위기에 처했던 지능형로봇법이 개정돼 2028년으로 연장됐다. 이에 따라 새해에는 제3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이 마련된다. 향후 5년간 우리나라 로봇 산업을 이끄는 로드맵이다.
고 교수는 지능형로봇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혁신 성장을 위해 더욱 강력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도입한 것처럼 전체 부처를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만 속도감 있게 로봇 산업을 진흥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고 교수는 “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만으론 역부족이다. 위원회가 보고서를 내고, 각 부처마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실상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면서 “대통령과 부총리 등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우리 과학과 산업이 더욱 뒤처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능형로봇 산업 성장을 위해 인력 확보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능형 로봇은 하드웨어(HW)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 역량과 융합이 필수다. 이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고급 인력은 육성하는 데 장시간 걸린다. 이런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막상 기술 격차를 좁히고 산업을 일으킬 원동력이 사라진다. 정부가 직접 유출 원인을 파악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확보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재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꿈을 펼치도록 창업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 교수는 “학교에 있다 보니 고급인재가 실리콘밸리나 글로벌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다”면서 “국내 연구 인력 공동화를 막으려면 왜 세계 인재가 실리콘밸리로 가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