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과학계가 꼽은 올해 최고의 연구 성과는 무엇일까.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를 발간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최근 일주일에 걸쳐 세계 과학기술인 1만2000명 이상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은 배아의 분화 과정을 밝히는 기술, 특정 염기서열의 활동을 조절하는 RNA 간섭 약물, 중성미자 관측 등을 대상으로 최고 연구 성과를 선정토록 했다. 사이언스는 편집자, 전문가 의견 등을 반영해 20일 최종 순위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 사이언스는 단일 세포의 RNA 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과 그로 인해 밝혀진 연구 성과 및 향후 잠재력을 올해의 최고 연구 성과로 선정했다.
올해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인간과 유전자가 70% 같은 모델 동물인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1개의 배아세포가 24시간 동안 다양한 유형의 세포로 발생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DNA가 전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RNA는 특정 기능을 하는 단백질 발현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물질이다. 연구진이 분석한 세포는 9만2000개에 이른다. 세포 전사체를 하나하나 정확히 분석하는 기술과 유전자 교정 도구인 '크리스퍼'를 동시에 이용해 시간대별 세포 발생 상황을 이미지화했다.
이런 분석이 가능해진 것은 △살아있는 생물에서 세포 분리 △각각 세포에 발현된 유전물질(genetic material)의 시퀀싱 △세포 표지(라벨링), 이 세 가지 기술이 효과적으로 융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기술 조합을 '단일세포 RNA 시퀀싱(single-cell RNA-seq)'이라고 부른다. 개별 세포의 RNA 시퀀싱이 가능해지면서 과학자는 수천개 개별세포를 분리, 각 세포 내 유전물질 염기서열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세포 내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됐는지 나아가 활성화된 유전자가 세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힐 수 있다는 의미다.
사이언스는 이 '트리오 기술'이 앞으로 생명과학 연구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인간의 세포가 평생동안 변화하는 과정' '조직 재성 과정' '암 등 질병의 발병과정에서 세포가 변형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이 기술이 효과적으로 쓰일 것으로 내다봤다.
단일세포 RNA 시퀀싱 기술은 지난해 일대 전기를 맞았다. 한 연구팀이 '단일세포 RNA 시퀀싱'을 이용해 초파리의 배아에서 특정한 순간에 추출한 8000개 세포의 유전자 활성을 측정했다. 또 다른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유충에서 추출한 5만개 세포 유전자활성 정보를 파악했다. 이를 통해 어떤 단백질이 세포를 특정 기관으로 분화하게 하는지 파악했다.
올해 하버드대 연구진 제브라피시 수정란이 25가지 세포유형을 만드는 과정을 밝힌데 이어 다른 연구진이 개구리 배아를 기관형성 초기단계에서 모니터링했다. 이 연구진은 일부 세포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이른 시기에 분화되기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플라나리아처럼 절단 이후 전신을 재생하는 메커니즘 규명에도 '단일세포 RNA 시퀀싱'이 쓰였다. 한 연구진은 플라나리아를 절단 한 후 유전자 발현패턴을 모니터링하고 새로운 세포유형과 발생경로를 발견했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암으로 발전하는 경향의 세포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장세포를 분석했다. 유럽의 3개 연구기관과 60개 업체로 구성된 라이프타임 컨소시엄은 '단일세포 RNA 시퀀싱'을 이용해 암, 당뇨병, 기타 질병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세포단위에서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인간세포지도(Human Cell Atlas)라는 국제 컨소시엄은 2년 동안 인간의 모든 세포유형을 분석, 조직과 기관을 형성하는 메커니즘 규명에 도전장을 던졌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