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변화의 물결이 경제사회 전반을 빠르게 변모시키고 있다. 물리와 사이버 세계가 연결되어 수많은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이를 분석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초지능' '초연결' '초융합' 이른바 3초(3超) 시대가 됐다. 먼 미래의 이야기 같았던 데이터 기반 지능정보사회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온 것은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서버·스토리지로 일컫는 컴퓨팅 장비의 비약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최근 의료, 제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AI), 빅 데이터 기술이 활성화되면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한 컴퓨팅 장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서버와 네트워크, 솔루션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센터도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중대형 서버에 대한 요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지능정보사회에서 우리 산업의 현실은 어떤가? 알파고 이후 너도나도 AI, IoT 등 지능정보기술을 외치고, 많은 기업이 제품 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정작 핵심 인프라인 서버·스토리지를 비롯한 컴퓨팅 장비 개발 기업은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IDC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서 2015~2017년까지 국산 서버·스토리지의 시장 점유율은 1~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서버·스토리지를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했지만 외산 선호와 국산 장비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최근 컴퓨팅 장비산업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인증제품 우선구매, 장비수요 예보, 중소규모 고성능컴퓨팅 자원 구축 등 공공 수요 확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고성능컴퓨팅(HPC) 이노베이션 허브를 구축하고 우리 중소기업의 서버·스토리지 성능 향상과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컴퓨팅 장비가 국제공인인증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막연한 외산 선호로 인해 공공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기술컨설팅과 함께 신뢰성 있는 성능시험 결과를 제공한다. 성능이 검증된 제품에 대해서는 국내외에 걸친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해 해외 진출과 시장 판로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이 결과로 국산 제품이 TPC(서버), SPC(스토리지) 등 글로벌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국제 공인인증을 획득하고 세계적으로 신뢰도를 공인받은 것은 물론 가격대비 우수한 성능을 갖추게 되면서 중국, 폴란드 등 해외로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반복 시험을 거쳐 성능 개선과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국산 장비가 국내 공공시장에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지능정보사회 경쟁력은 수많은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처리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정보를 획득·활용하는 데 있다. 그러한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 컴퓨팅 장비가 시장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미래 지능정보사회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것과 직결된다 할 수 있다. 컴퓨터 불모지를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변모시키고 IT강국으로 우뚝 선 국가정보화 성공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컴퓨터를 잘 만드는 나라'로 향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
한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장수요와 경쟁력이 있는 제품, 전문 인력과 신기술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선순환 생태계 구축까지 정부와 산학연이 협력해 연구개발 투자 확대는 물론 공공수요 지속 확대, 국제 공인인증 지원을 통한 기업 경쟁력 확보 등 일관되고 강력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하나된 노력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컴퓨팅 장비 산업 강국 대한민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재문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kccpark@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