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다중대표소송제도가 상장 지주회사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통해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상장 지주회사는 외국인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연(원장 권태신)은 대표소송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상법상 기본원칙인 법인격 독립의 원칙을 부인해가며 다중대표소송을 도입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10일 밝혔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다중대표소송을 명문으로 입법화한 나라는 세계에 일본밖에 없다. 미국, 영국 등은 판례로 인정하지만 완전 모자회사 관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험적인 입법의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한경연에 따르면 다중대표소송 도입 관련 상법개정안 중 고(故) 노회찬 의원과 이훈 의원의 법안은 단독주주권을 소송 요건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 주식 1주만 있어도 소송이 가능하다.
고 노 의원안에서 소송 가능한 계열사는 '사실상 지배회사'이기 때문에 상장 지주회사 시가총액 184조원의 0.000002%에 해당하는 350만원만으로 90개 상장 지주회사 소속 1188개 전체 계열회사 임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LG 주식 한 주만 있으면 65개 모든 계열사 임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김종인 의원, 오신환 의원, 이종걸 의원이 발의하고 법무부가 지지하고 있는 '상장 모회사 지분 0.01% 이상 보유' 및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50% 이상 보유'안을 적용하면 184억4000만원으로 90개 상장 지주회사의 자회사 중 72.1%(408개)의 기업에 다중대표소송을 할 수 있다. 20억원만 있으면 자산규모 453조원 규모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14개에 소제기가 가능하여 적은 금액으로 자산 수백조원 규모의 금융 그룹을 흔들 수도 있게 된다.
고 노 의원안과 채이배 의원안은 장부열람권 조항도 포함하고 있어 기업에 더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 노 의원안의 경우 모회사 주식을 1주만 갖고 있어도 모회사가 3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의 회계장부 열람이 가능하다. 지주회사 주식 1주만 갖고 있어도 그 자회사의 장부를 모두 열람할 수 있는 것이다. 장부는 기업의 원가정보, 거래관계, 장기사업계획, R&D 세부현황을 모두 담고 있어 장부를 열람한다는 것은 기업의 기밀을 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해외의 경쟁기업이 이 제도를 악용할 경우 지주회사의 주식을 한 주 구입한 후 자회사의 기밀을 모두 엿볼 수 있게 된다. 가령 해외의 석유화학 또는 배터리 업체가 (주)SK 주식 한 주를 산 후 SK이노베이션의 회계장부를 열람해 기밀을 빼낼 수 있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어려운 경영상황 속에서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기업에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것”이라며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제도를 도입할 때는 제도 도입이 미칠 영향이나 다른 나라에 보편적으로 도입됐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중대표소송 관련 상법 일부개정 법률안 비교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