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42>미노베이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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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1954년 어느 날 공학자이자 낚시광인 마르크 그레구아르는 참담한 마음으로 창고에 서 있었다. 간만에 별장 사물함에서 꺼낸 낚싯대엔 줄이 잔뜩 엉켜 있었다. 해질녘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도착하자마자 낚시대를 드리우는 상상은 물거품이 된 게 자명했다.

늦저녁 창고를 다시 찾은 그레구아르는 얼마 전 지인에게 얻은 테프론을 발라 보기로 한다. 놀랍게도 낚싯줄은 언제 엉켰냐는 듯 찰랑거렸다. 이 얘기를 들은 아내 콜레트는 프라이팬에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1956년 그레구아르는 테팔이란 회사를 설립한다. 테프론을 코팅한 알루미늄 프라이팬이란 뜻이다.

뱁슨대학의 기업전략 교수이자 '창업가 바이블'의 저자이기도 한 대니얼 아이젠버그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었다. 자기 의도와 달리 학생에게 혁신이란 그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아이디어로 새 시장을 만들어 내는 그런 일로 여기고 있었다.

실상 아이젠버그는 창업가가 꼭 혁신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혁신이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천재의 몫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사례는 도처에 있었다.

1999년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마르코스 갈페린과 에르난 카자흐는 모국 아르헨티나에서 이베이를 열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메르카도 리브레(Mercado Libre)'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그러자 이베이 모조품에 '공짜시장'이란 사이트 이름부터 뭐냐고 비아냥거렸다. 두 사람은 이베이를 조금 비틀어 보기로 하기로 한다. 중고품 대신 새 제품을 취급하기로 했다. 경매 대신 가격은 미리 정했다. 소포 대신 공공장소에서 서로 만나 주고받게 했다. 2007년 처음 나스닥에 상장했고, 지금은 시총 140억달러짜리 기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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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미구엘 다빌라 스토리도 갈페린과 카자흐를 닮았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을 시절 눈여겨 본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멕시코시티에 세우면 어떨까 했다. 이름도 미국 영화채널 시네맥스(Cinemax)를 조금 비틀어 시네멕스(Cinemex)로 지었다. 멕시코의 시네맥스란 뜻이었다. 시네멕스는 대성공을 거뒀고, 2017년에도 멕시코 영화 시장 가운데 29.1%를 차지하고 있다.

훗날 다빌라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종종 “내가 한 가장 큰 혁신은 팝콘에 버터 대신 라임과 칠리소스를 뿌리는 것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이 다빌라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할 최적 시장과 타이밍을 찾아냈고, 놀라운 속도로 실행해 냈다.

아이젠버그는 혁신에 실리콘밸리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면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면 훌륭한 혁신이 된다고 믿는다. 참신함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면 그 빈자리를 융통성과 실행력으로 메우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것에 '미노베이션(Minnovation) 방식'이라고 이름 붙인다.

아이젠버그는 정작 이노베이션(innovation) 앞에 붙인 'm'이 무엇을 말하는지 뚜렷이 밝히지 않았다. 단지 어렴풋이 이것저것 조합한 것(mixing)이라는 단서를 남겨 놓았다.

어찌 보면 그가 m의 의미를 숨긴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당신만의 라임과 칠리소스를 찾아내라는 의미다. 결국 혁신이란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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