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대 벤처 열풍이 꺾였을 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는 특정 건물과 기업의 성쇠(盛衰)를 연관 지은 얘기가 회자된 적이 있다.
국내 벤처기업을 대표하던 M사가 소유한 건물로, 그곳이 풍수지리에서 아주 안 좋은 자리라는 것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 인근 지역이다. 풍수지리상 강물이 들어오는 곳은 재물이 들고 반대면 재물이 나간다고 한다. 실제 그 건물은 한강이 흘러 나가는 것만 보이는 곳에 있다.
이런 속설을 더 부풀린 것은 실제 그곳에 둥지를 튼 회사가 줄줄이 망해 나갔기 때문이다.
해당 건물은 원래 D건설사가 건축, 본사로 썼다. 이 건설사가 망하면서 M사가 인수했지만 건물은 몇 년 만에 C사로 넘어갔다. 당시에도 풍수가 나쁘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C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C사도 2~3년 만에 망가졌다. 그 이후에도 이 건물 주인이 몇 차례 바뀐 걸로 안다.
건물과 매수 기업의 묘한 상황이 겹치면 해당 건물에 '풍수 괴담(?)'이 만들어진 셈이다.
테헤란로에는 이 밖에도 건물 관련 풍수 괴담이 많다.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빌딩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솟아오른 땅의 위치가 불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H사가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 끝부분을 뾰족하게 처리한 것도 이 기운을 하늘로 흘려보내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의 기운이 강해서 규모 작은 회사가 입주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돌아 다녔다. 실제 몇몇 입주한 잘나가던 벤처기업이 보따리를 쌌다.
풍수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관심이 상당하다.
빌 게이츠가 풍수에 조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동북, 동, 동남쪽 세 방향에 울창한 산맥이 위치하고 서쪽은 호수로 둘러싸인 '산환수포(山環水抱)'형 명당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풍수하면 묘 터와 지관을 연상하지만 서양은 조경학, 조경건축가나 조경예술가 등을 떠올린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지오맨시'라고 하는 흙점으로 땅 또는 지세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던 것이 유행했다고 하니 동서양을 떠나 풍수는 연약한 인간의 본성과 연관된 것 같다.
이런 풍수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독특한 사조를 이뤘다. 바로 '비보(裨補) 풍수'다. 신라 말 승려인 도선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풍수지리 측면에서 완벽한 곳은 없으며, 오히려 지나치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지리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이를 보완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면 화재를 막기 위해 불의 기운을 억누르는 '해태 상'을 만들거나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 한쪽이 다른 쪽에 비해 현저히 취약 또는 낮을 때 인공으로 언덕을 조성하고 돌탑을 쌓아 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인위로 산을 만들기도 했다. 조산(造山)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주어진 환경(풍수지리)에 좌절하지 않고 이를 보완한 우리 조상의 지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14일 전자신문이 개최한 '스마트금융 콘퍼런스'에서 만난 많은 금융인이 내년 경제 상황에 많은 우려를 표했다. 경기 하강 국면을 전제로 모든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금융권조차 이런 분위기여서 다른 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가 위기다.
내년이면 문재인 정부는 출범 3년차를 맞는다. 이제 와서 경제 정책 기조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취약한 부분을 보완, 수정할 수는 있다. 경제 정책의 수장을 바꾼 것도 이의 일환이길 바란다. 현 정부가 우리 선조가 만들던 '조산'의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