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 대비 3.7% 늘어난 20조4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산업혁명 선제 대응과 혁신 성장 가속화에 초점을 맞췄다. R&D를 통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과소 투자 입장과 국가 재정 대비 R&D 투자가 거의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투자 효율화를 통해 R&D 가성비를 높여야 한다는 한계 투자 입장까지 R&D 예산 20조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투자 규모의 적절성에 대한 팩트 체크와 갑론을박보다 중요한 것은 R&D 활동과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혁신 성장 가속화를 위한 진형(陣形)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 정부 R&D 예산 투자가 '밑 빠진 독'이 될지 '성장의 지렛대'가 될지 여부는 혁신 생태계 내에 있는 다양한 혁신 주체의 '생각 모형' 또는 혁신 분위기에 의해 결정된다. R&D 예산 투자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혁신 주체 간 신뢰 형성과 더불어 정부 R&D 투자의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정부 R&D 예산 사용법을 알아보자.
첫째 정부와 민간의 상호 신뢰 형성과 기본 역할에 충실한 사용법이다. 흔히 알고 있는 'GDP 대비 비중 세계 1위, 절대 규모 세계 6위(2015년 기준)'라는 타이틀은 민간 R&D 투자를 합한 수치다. 정부 R&D 예산 증액이 민간 R&D 투자 감소로 이어지거나 연구자가 정부 R&D 예산으로만 쏠리는 현상이 생긴다면 정부의 투자 증가가 자칫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늘렸으니 막무가내로 민간도 R&D 투자를 늘리라고 하기보다 서로 본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기초 원천 기술 확보, 과학기술 기반 지역 혁신 역량 구축, 인재 양성, 고위험·중장기 R&D 등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R&D 성과가 민간의 후속 투자로 이어지고, 사업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혁신 성장의 전형을 만드는 것 또한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둘째 정부 R&D 예산 20조원 시대에는 정부 투자가 단순한 '마중물' 역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R&D 사업 기획과 관리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껍질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업 목표와 추진 근거까지 뿌리째 바뀌어야 한다. 가치사슬의 스마일 커브를 수직 이동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기획에서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를 바꿔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이 예상되는 분야에서 정부가 단순히 마중물 역할만을 해서는 안 된다. 주도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스마일 커브 수직 상승 이동에 참여했을 때 효과와 이익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등을 포함한 협력 규칙을 만들고, 이에 맞게 R&D 예산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전략 기획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성과에 대한 책임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R&D 사업에 대한 타당성 평가는 합목적성에 방점을 둬야 할 것이다.
셋째 혁신 주체, 혁신 자원 연결에 정부 R&D 예산을 본격 사용하자. 4차 산업혁명 시대는 R&D 활동에 변화를 불러들이고 있다. R&D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퀵서비스로 시제품과 성분 분석 자료가 전달되고, 온라인으로 그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연구노트나 직접 기술 이전에 의존하던 기존의 협력 방식에서 벗어나 센서를 이용한 실시간 데이터 전송과 영상회의를 통한 실시간 연구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면 정부가 R&D 예산을 여기에 쏟아 부어도 가치 있는 사용법이 될 수 있다. R&D 효율화를 위한 각종 플랫폼을 구축하고, 다양한 유형의 사업화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등 사용법은 끊임없이 찾을 수 있다.
넷째 R&D 영역에서 나타나는 기술 격차, 혁신 역량 격차, 지역 간 격차 등 다양한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 R&D 예산을 전략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격차를 추월한다는 기세로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역 간의 R&D 혁신 역량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역혁신역량 격차해소펀드'나 사회 문제 해결형 R&D 예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미래 사회에는 기술 개발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기술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창의와 혁신을 기치로 하는 선도형 혁신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과학기술과 R&D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기술 선진국 장벽을 부수고 경쟁국을 떨쳐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 진형을 짜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R&D 예산 사용법을 익히고 실행하는 것이 선결돼야 할 것이다.
오세홍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선임연구위원 oshok@kis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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