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산업이 취약하던 2000년대 초반에 정부는 세트 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부품·소재 육성 정책 수립에 골몰했다. 국산화를 도외시하고 부품·소재를 선진국에 의존하는 형태로는 국가 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당시는 전자제품 가격에서 그 속에 들어가는 외국산 핵심 부품·소재 값이 절대적이던 때였다.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외국 핵심 부품·소재 기업이 먹는 구조였다.
그래서 추진한 정책이 '일렉트로 0580(E-0580)' 사업이다. E-0580 프로젝트명은 5년 안에(시행 연도 기준 2005년까지) 부품국산화율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5년 후 전자부품 국산화율 60% 수준 달성에 그치면서 수치상으론 실패한 사업으로 기록됐지만 국산화에 따른 수입 대체 효과와 외산 핵심 부품 수입 단가 인하 효과 등을 고려하면 정성적 성과는 막대했다. 그리고 그 노력과 성과는 2018년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소재·부품 무역흑자가 누적으로 1061억달러를 기록했다. 역대 최초로 1000억달러를 달성한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더욱이 전체 산업 무역흑자 폭은 줄어든 상황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빛난다. 품목별로 볼 때 수출액 2379억달러 가운데 전자부품이 44%(1046억달러)를 차지, 전자 분야 부품소재 육성 정책이 주효했음을 간접 입증해 준다.
부품·소재 산업이 강한 국가는 독일과 일본 사례에서 보듯 위기 상황에 직면해도 국가 산업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동차·가전제품 등 세트 산업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세트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부품처럼 소리 없이 강하고 중요하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부품·소재 제조업이 강한 독일과 일본 경제는 굳건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 소재·부품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소재·부품 경쟁력은 국가 산업의 버팀목이자 미래 성장 기반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트 강국을 넘어 부품·소재 강국의 길로 들어섰다. 강한 세트 산업 경쟁력을 활용해 더욱 확고한 부품·소재 산업 지위와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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