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핀테크가 금융분야 주요 화두로 부상한다.
지난해부터 인터넷전문은행, 소액 외화송금, P2P, 암호화폐 등의 산업이 움트고 있다. 단순히 소비자 편의성을 높일 뿐 아니라 시중은행에도 자극을 주며 '메기 효과'를 톡톡히 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혹은 핀테크와 핀테크 간 합종연횡을 이루며 신규 서비스도 속속 선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이 많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은산분리 규제로 자본 확충 문제에 시달린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 혁신금융사업자 지정 등을 골자로 한 금융혁신지원특별법도 흐지부지될 위기다. 금융 분야 신 성장동력이 될 핀테크가 힘을 잃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메기효과'에도 은산분리로 발목 잡혀
출범 1주년을 맞은 인터넷전문은행은 비대면 거래 활성화에 기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모바일뱅킹 실제 이용객이 전체 인터넷뱅킹 고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5.0%로 사상 최대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84.3%)부터 증가해 올해 1분기 마침내 90%선에 진입했다. 모바일뱅킹을 포함한 인터넷뱅킹 이용 비중도 전체 금융서비스 전달 채널 중 49.4%까지 높아졌다.
인터넷전문은행 서비스 개시 이후 시중은행도 통합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6개 앱으로 분산됐던 금융거래를 '쏠'로 통합했으며, KEB하나은행은 3개 앱을 '1Q 뱅크'로 묶었다. KB국민은행은 전면 개편한 '리브(Liiv)'를, 우리은행은 '위비톡'을 내놓았다.
비대면 거래 활성화를 위해 시중은행과 핀테크 업체 간 협업도 이뤄졌다. 최근 IBK기업은행은 티몬에 이어 카카오페이에도 모바일 지점을 개설했다. SC제일은행은 페이코 비대면제휴계좌 서비스를 출시했다.
'모바일뱅킹 강화' 바람을 몰고 온 인터넷전문은행은 앱 투 앱 결제 활성화, 해외송금 수수료 인하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작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2분기 케이뱅크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0.71로 전년(17.38) 대비 크게 떨어졌다. 3월 말(13.48%)보다도 악화됐다.
당초 1500억원 목표였던 2차 유상증자에서 300억원만 모집하는 데 그친 탓이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은산분리 규제가 꼽힌다. 케이뱅크는 카카오뱅크보다 은산분리 규제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 케이뱅크에는 압도적인 주주가 없다. 은산분리에서 자유로운 주주도 우리은행(13.79%) 하나뿐이다.
반면, 카카오뱅크 주주 중에는 한국투자금융지주(58%)과 국민은행(10%) 두 곳이 은산분리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런 카카오뱅크조차 유상증자가 쉽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4월 5000억원 규모 2차 유상증자를 성사시키며 2분기 BIS 자기자본비율을 16.85%까지 끌어올렸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은산분리 규제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모처럼 훈풍이 불었다. 일각에선 케이뱅크가 은산분리 완화 후 대대적인 증자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했다.
그러나 '8월 처리'는 여당 강경파 의원의 반발로 불발됐다. 지분보유 완화 대상 등에 대한 여야 간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금융위 행보 가로막는 국회 논의
금융위원회 '금융 혁신' 행보가 국회 벽에 가로막혔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인가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필요한 경쟁도 평가 세부 기준을 3분기 내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은산분리 완화 무산으로 유명무실해졌다. 기존 사업자도 유상증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신규 사업자가 들어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와 인터넷전문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못한다는 점을 들며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한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법에서는 사금고화 우려에 대한 장치로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25%에서 10%로 낮추고 대주주가 발행한 주식 취득 한도를 자기자본의 1% 이내에서 취득할 수 없게 한다.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으로 은산분리를 공고히 하던 미국조차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 제정으로 산업대부회사(ILC) 제도를 마련해 얼라이뱅크, BMW뱅크 등 자회사 형태 인터넷전문은행을 허용했다.
유럽연합도 '제2차 은행지침'으로 은행 주식 일정 비율(10%, 25%, 33%) 이상 직·간접 보유 시 감독기관에 보고 후 출자자 적격성 심사를 통해 승인하고 있다.
중국은 아예 은산분리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마이뱅크(알리바바 지분 30%)와 위뱅크(텐센트 지분 30%) 등이 3년 만에 급성장할 수 있던 배경이다. 중국 1위 검색엔진 업체 바이두와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도 각각 '바이신뱅크'와 '시왕은행'으로 가세하며 시장을 키우고 있다.
본연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점에는 인터넷전문은행도 할 말이 많다.
윤호영·이용우 카카오뱅크 공동대표도 “중금리라는 명칭이 들어간 상품만 집계되는 바람에 그런 지적이 나왔는데 카카오뱅크에서 대출 받은 4~7등급 신용자 비중이 38%나 된다”고 해명한 바 있다.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 규제 및 개인신용정보보호법 완화가 선행돼야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 역할을 못한다고 하기에 앞서 인터넷전문은행이 봉착한 한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BIS 자기자본 비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확대하려면 금융정보 외 기타 정보 활용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완화가 우선돼야한다”고 덧붙였다.
◇핀테크 및 P2P, 암호화폐에도 '비상등'
각종 규제는 비단 인터넷전문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완화 등은 다른 핀테크 업체에서도 요구했던 사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상에서는 금융 사기 예방 솔루션을 위해 사기범에게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야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금융위에서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과 신용정보법 개정 입법도 강조했다. 당초 인터넷전문은행법과 묶어 '금융혁신 3법'으로 상임위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대와는 달리 인터넷전문은행법과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이 나란히 좌초되며 핀테크 업계 전반에 악재로 작용했다.
이로써 금융규제 샌드박스, 혁신금융사업자 지정 등은 시기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신용정보법 개정을 바탕으로 한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도입도 마찬가지가 됐다.
마이데이터는 핀테크 업체가 은행·카드·보험 등 각 금융사에 흩어진 신용정보를 한 번에 조회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아무리 '금융 혁신'을 강조해도 국회 논의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규제 산업으로 포함된 인터넷전문은행, 핀테크 관련 논의조차 암초에 걸리며, P2P와 암호화폐 관련 논의는 더욱 까마득해질 전망이다. 특히 P2P는 대출과 투자를 중개하는 새로운 금융업 모델로, 현행 대부업법으로 규제하기에 한계가 있다. 현재 P2P 관련 의원입법 4건과 대부업법 개정안 1건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암호화폐는 수익 과세 여부조차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소벤처기업부가 암호화폐 거래업을 사행시설 운영업과 묶어 벤처 제외 업종으로 지정하며 논란만 낳았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