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투명블라인드]'ing(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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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업·경제 정책 가운데 'ing(진행 중)'가 유독 많다. 정부는 많은 것을 바꾸려 '준비 중'이고, 산업계는 변화 방향을 주시하며 길을 '찾는 중'이다. 8대 신성장동력 육성 정책도 '추진 중'이다.

'그 밥에 그 나물' '과거 정책 짜깁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다양한 정책과 육성 계획이 발표됐다. 그 정책 또한 디테일로 들어가면 대부분 'ing'다. 확정된 정책도 산업 현장에선 부처간 조율 중이라며 진행이 안된다. 경제부처와 비경제 부처간 이해 및 교류 부족으로 실행이 늦어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기업 입장에선 정책이 결정된 게 없는 셈이다.

현 정부가 혁신성장이라고 표현하는 산업·경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에 밀려 시작 자체가 늦어진 것도 원인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혁신성장 정책 속도감을 강조한 이후에도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고'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소프트웨어(SW)하기 좋은 나라'.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많이 듣는 얘기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SW 생태계 조성 정책이 담긴 SW진흥법 개정안은 만들어 놓고도 부처간 협의 등을 이유로 아직 실행이 안된다. 이미 수립된 클라우드 산업 육성 정책도 부처간 마찰로 지지부진하다. 분명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기업이 실제 뭔가를 하려하면 아직 최종결정은 'ing'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은 더 심하다. 과거 정부 때와 비교해 정책 결정 속도가 늦고 현장 소통도 크게 줄었다. 강력하고 빠르게 추진된 것은 산업 성장과 투자 여건을 악화시키는 요금인상 압박뿐이라는 말이 나온다.

IT 기반 서비스 혁신을 통해 기존 금융업계에 큰 변화를 부른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건도 마찬가지다. 출범 당시 곧 풀릴 것으로 기대했던 업계는 경쟁력 확보는커녕 생존을 위협받으며 성공 모델에서 멀어 지고 있다. 벤처 및 스타트업의 핀테크 기반 비즈니스도 최근 논란이 된 정부의 스크래핑 기술 금지라는 복병이 튀어나오며 업계 간담을 서늘케 했다. 소자본 창업이 활발한 O2O 산업은 글로벌업체는 승승장구하는 동안 우리는 규제로 인한 사업기회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정부가 2022년 세계 10대 바이오 강국 구현을 목표로 내세운 바이오산업은 '제2 바이오 붐' 조성이라는 기치가 무색하게 시장 분위기를 역행하는 규제로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원격의료도 공회전 중이다.

산업 현장은 답답함을 감추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아이템은 글로벌 경쟁이자 승자독식 구조다. 한국에서 성공 모델을 확보해야 해외에서 명함이라도 꺼낼 수 있다. 속도 경쟁이다. 앞서가거나 최소한 선두권에서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시작은 늦었지만 청와대와 범부처가 나서 산업 규제 완화 및 활성화를 외치고 있다.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이 현 정부 최대 딜레마이자 넘어야 할 고비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책의 큰 흐름을 무시하고 부처별 지엽적 사안으로 엇박자를 내면 속도는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의도했건 안했건 산업 현장은 비 경제부처의 산업에 대한 낮은 이해로 경제부처와 엇박자가 나는 것을 힘겨워 한다.

2기 내각이 출범한다. 장·차관 면면이 기대감을 높인다. 경험과 업무 능력을 겸비한 전통 관료로 포진돼 탁상행정이 줄어들고 정책에 속도감이 붙을 것이다.

'진행 중(ing)'이란 곧 될 거란 기대를 품고 있다. 하지만 길어지면 안될 것 같다는 부정 뉴앙스로 바뀐다.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 산업과 경제는 위축된다. 새로운 기술(서비스)이 규제에 막혀 나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현장에서 뛰는 기업과 정책 사이 시차는 불가피하다. 얼마나 줄이느냐가 글로벌 경쟁력 관건이다. 빠른 정책 결정과 추진. 2기 내각이 풀어야 할 숙제다.


심규호 ICT융합산업총괄 부국장 khs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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