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31>콘텍스트 기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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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문(上下文). 문장의 앞과 뒤란 말이다. '문맥'이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 옛 사람들은 네 글자나 다섯 자를 모아 하나의 구절을 삼고, 이 구절들을 모아 글을 삼았다. 이처럼 너댓 글자에 뜻을 담자니 함축이 중요했다.

진초갱패(晉楚更〃)를 예로 들어보자. 오패(五〃)가 제환공, 진문공, 진목공, 송양공, 초장왕의 이름인 만큼 진초를 대표로 들어 춘추 오패를 뜻한다. 또 장군백전사 장사십년귀(將軍百戰死 壯士十年歸)라는 문장에서는 장군과 장사가 겹치니 앞뒤 구절에서 장사와 장군을 번갈아 생략했음을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매핑 이노베이션'의 저자이자 유명 TED 강사인 그레그 새틀은 종종 한 가지 궁금한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100분의 1 비용으로 가능한 진정한 혁신이 있을까.

'매핑 이노베이션'을 준비하면서 주변에 수소문해 보았다. 꽤나 유명한 스토리 하나가 들렸다. 발단은 어느 기업이 수백만달러짜리 계약을 놓칠 상황에서 비롯됐다. 새로 개발한 수질오염센서가 유해 물질을 미소량 놓치고 있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엔지니어에 해양생물학자까지 모아 팀을 꾸렸다. 성과 없이 오전 회의가 지나고, 오후 회의가 시작될 즈음 해양생물학자가 조개를 한 보따리 책상 위에 풀어놓았다. 극소량의 유해 물질에도 금세 반응하는, 이 동네에선 잘 알려진 것들이었다.

이 스토리가 말하는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바로 다른 지식 서클에서 해결책을 찾는 개방형 혁신이다. 그러나 이 우화 같은 사례는 다른 사실도 한 가지 보여 준다. 혁신의 방법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다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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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대부분 혁신은 주어진 지식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제품이든 공정이든 기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다. 기존 지식으로 쌓아 놓은 텍스트 묶음의 연장선이다.

다른 방식도 있다. 목표는 정하되 어디서 시작할 지는 정해 두지 않는다. 불확실하고 위험해 보인다. 그런 탓에 이 방식은 비로소 기존 지식의 한계점에서 선택되기 일쑤다. 만일 기존 마이크로칩 기술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해양생물학자가 초청받을 일도 조개를 쏟아 부을 기회도, 심지어 그럴 용기도 못 냈을지 모른다.

혁신을 구분하는 다양한 방법이 셀 수없이 많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면 그 가운데 하나는 텍스트 기반 방식이다. 기존 지식과 기술에 기반을 두고 성능을 높여서 해결책을 찾아간다. 두 번째는 콘텍스트 방식이다. 목표와 상황에는 집중하되 그 대신 지식과 방법에는 제약을 두지 않는다. 전자가 지식과 경험의 틀로 혁신을 재단해 가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혁신을 상황 속에서 디자인하는 방식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주가드 혁신, 가치 혁신 모두 여기에 가깝다.

옛 문장가들은 글자들이 서로 의미를 분명히 해 주고 보충해 줌을 으뜸으로 여겼다. 위상하문의 호상천발 호상보족(謂上下文義 互相闡發 互相補足)이라 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다.

혁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글자 하나하나의 텍스트에 주목할 때 자칫 혁신의 온전한 가치와 잠재력을 놓치기 쉽다. 상하문을 견줘 볼 때 온전히 시문을 이해할 수 있듯 혁신도 이럴 때 진정한 한계를 넘는다. 내가 따져봐야 할 진정한 맥락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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