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경기·강원 접경 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군사 긴장감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이란 전제가 있지만 이날 언급된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제안이나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광복입니다”는 언급과 묶어 생각해 볼 때 문 대통령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실상 통일경제특구는 지난해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이었고 '4·27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한 로드맵과 경제특구 설치를 위한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이 추진된 만큼 경축사를 통해 공식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남북 두 정부가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겠지만 새 통일경제특구가 남북한 상호 신뢰와 더불어 우리 경제에 성장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 기대한다. 비록 이번 통일경제특구 추진의 근간이 경제 이익 극대화에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많은 일자리와 함께 지역과 중소기업이 비약 발전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새 통일경제특구 모습이다. 개성공단 경우 2011년 말 입주 기업 60%가 봉제, 가방, 신발 등을 생산했다. 나머지는 기계금속, 전기전자, 화학, 종이·목재, 식품 업종으로서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특구는 중소기업의 공동 플랫폼으로서 중기 협동조합이 주도 역할을 하거나 산업클러스터나 테크노파크를 지향해야 한다는 제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우리 기업이 제품을 좀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특구 역할과 기능을 찾아서도 안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입주 기업 80.3%가 개성공단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꼽았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인센티브가 되면 특구가 만들어 내는 기회의 창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실상 개성공단도 인력 수급 면에서 녹록하지 않은 점은 강원도 접경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닐 수 있고, 개성공단 진출 기업 생산성이 국내 공장 약 80% 수준이었음을 볼 때 낮은 임금만큼이나 생산성도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해야 한다. 새 특구를 단순한 중소기업 집적지가 아니라 나름의 지식 자족 기능을 갖춘 혁신지구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또 하나 있다.
어떤 산업과 기업 중심으로 구축할지도 따져봐야 할 사항이다. 개성공단과 연계한 물류 중심 복합 기능이나 관광 복합 기능은 국회 토론회에서도 거론된 바 있다. 강원도에는 그동안 추진해 온 생물바이오 벨트나 해양바이오 벨트를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양 특구의 입지 특성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의 맥락을 고려해야만 특구의 경제 승수 효과가 제대로 모양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한때 고임금 문제로 국내를 떠난 리쇼어링 기업이나 유턴 기업을 유치하자는 제안도 상징성 측면에서라도 한 번 고려했으면 한다.
우리가 지금 통일경제특구를 상상하는 곳은 지난날 분단과 분쟁의 '그라운드 제로'였다. 비워둬야만 했고, 황폐한 감정이 지배하던 공간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통일경제특구의 본질은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데 있는지 모른다.
개성공단이 그랬듯 이상과 현실 간 괴리는 클 것이다. 그렇다고 개성공단으로 새 통일경제특구의 미래 모습을 재단할 필요까지는 없다. 통일경제특구에 '공단'이란 문패 대신 '이노베이션'이나 '크리에이티브'란 이름을 덧입혀 주고 싶은 것은 과한 욕심일까. 통일경제특구를 전에 없던 클러스터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한번 시작했으면 한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