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로봇을 잘하는 국가가 되려면

사전적으로 '잘하다'란 말은 '옳고 바르게 하다' '익숙하고 능란하게 한다'는 의미다. '로봇을 잘한다'라는 말을 풀이하면 누가 봐도 쉽게 수긍되는 방식으로 로봇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의미쯤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에 국가라는 주어가 붙어 '한 국가가 로봇을 잘한다'라고 한다면 '로봇을 국가의 필요에 맞게 유효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고 글로벌 리딩을 한다'쯤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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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우리나라는 ICT 부문에서 국가적으로 '잘하는' 나라다. 대표 사례로 '전자정부'를 들 수 있다. 1990년대 집중 연구를 거쳐 2000년대 초 완성된 전자정부 체계는 정보기술을 이용해 행정 업무를 혁신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신속히 적시에 제공, 서비스의 질 및 투명성 제고에 기여했다. 세계 상위권이 된 '잘하는' 우리 시스템을 많은 국가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로봇은 우리가 가장 잘해 온 ICT, 사용자 눈높이를 맞춰 줄 인공지능(AI) 기술, 경쟁력을 길러 줄 부품·소재, 생산 노하우가 응축된 제조기술이 융합돼야 하는 분야다. 이러한 분야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로봇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중국 경쟁력 위협, 핵심 부품·소재 수입 의존 문제 등이다. 그래서 좀 복잡한 문제를 대면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로봇을 잘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정답은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강점을 잘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거나 우회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몇가지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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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먼저 로봇이 인지,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로봇은 개별 단위 공간 안에서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을 활용해 움직이고 있다. 최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5G망을 좀 더 쉽게 로봇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및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리빙랩도 좋고 스마트시티도 좋다. 로봇 산업에서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언제든 로봇을 운영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많아져야 한다.

두 번째로 AI 기술 및 생태계, 로봇기술 및 생태계가 융합되는 일이다. 5G망과 빅데이터 서비스를 매개로 이들 생태계의 협력형 경쟁(하이퍼코피티션)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이익 지향점은 다르지만 충분히 융합된 생태계 속에서 새로운 시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세 번째는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다. 기술경쟁력과 제조원가 문제가 깊이 연동되는 만큼 혁신 주체가 많은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된 국산 부품소재를 생태계에서 사용하고 제품 안정화를 검증해 나갈 수 있는 완성품 제조기업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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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다양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메이커스 운동이 일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각 개인이 로봇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지근 거리의 공간이 많이 구축됐으면 한다. 또 전문 지식 및 경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온·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돼야 한다. 과거에는 로봇 경진대회 등을 통해 이러한 흐름이 이어져 왔지만 PC를 조립할 수 있는 비전공자가 많아진 것처럼 원하는 로봇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숨은 실력자가 많아져야 한다. 메이커스 프로그램도 좋고 개별적인 로봇교육 프로그램도 좋다. 궁극적으론 우리나라 로봇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로봇 활용을 도와주는 새로운 유형의 로봇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로봇을 활용한 서비스 구현을 위해 지그도 제작해야 하고 통신망도 조정해야 하며, 필요 시 관리 SW도 제작해야 한다. 이런 것을 종합 구현하는 기업을 로봇 시스템통합기업(SI)라고 한다. 지난달 일본에서는 이러한 로봇 기업 150여개사를 모아 'Sier(SI+er)' 협의회를 구성했다. 로봇 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은 제조사가 아니라 SI 기업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생산 공정을 로봇 공정으로 변모시켜 주는 산업용 로봇 SI, 사무공간, 공항 등에 안내서비스 로봇 운영을 가능하게 해 주는 서비스로봇 SI 등이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기업으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jzinu@kir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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