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르는 주부 A씨는 열대야가 시작되자 밤 내내 에어컨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기요금 폭탄 소문에 마음껏 가동하기가 부담스러워서 끄고 켜기를 반복했다. 만약 A씨가 사용 전력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용에만 적용되는 계절·시간(계시)별 요금제를 주택용에 도입해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전력사용량과 시간을 택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하기 위해 가입자 전력사용량과 요금부담액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계량기가 전국에 구축된 이후 상당 기간 데이터를 집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소비자와 공급자가 전력 사용 패턴, 전력사용량, 요금부담액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공유 가능한 스마트그리드 기반 양방향 첨단 지능형원격검침인프라(AMI) 구축·운영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 2200만(2194만호)가구에 스마트계량기 보급을 완료할 계획이다.
선진국은 4차 산업혁명 동력 가운데 하나인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에너지 산업에 적용, AMI를 구축하고 있다. AMI는 전력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을 연동해 전기, 가스, 수도, 난방, 온수 등 에너지 자원 사용 현황을 실시간 확인하고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AMI 시스템은 디지털 계량기와 통신 기능을 접목한 스마트계량기, 스마트계량기로부터 검침 정보를 수집·저장하고 전력 공급자 서버로 전송하는 데이터집중장치, 데이터관리 및 과금 시스템 등으로 구성된다.
공급자는 스마트계량기를 통해 전력 사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력사용량과 요금정보 등을 고객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해 소비자가 에너지사용량을 효율 관리할 수 있게 한다. 전력 검침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전국 각지 다량의 계량기에서 높은 빈도로 통신이 가능하고, 요금부담이 없어야 하며, 자체로 최소한의 전력만을 소모하는 새로운 무선통신기술이 적용돼야 한다.
그중 기존 한국형 고출력 전력선 유선통신(PLC)기술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과 도시 지중화 구간에 데이터집중장치와 스마트 계량기 구간의 근거리 무선통신은 신속성과 정확성을 보장하고 저전력·저비용 특성을 갖추는 게 AMI 시스템 구축 핵심이다.
근거리 무선통신은 과거 전력선을 이용한 유선통신 방식 대안으로 블루투스, 지그비, 로라, LTE 인터넷 방식 등을 적용했지만 최근 근거리무선통신 방식으로 Wi-SUN이 각광 받고 있는 추세다.
Wi-SUN 방식은 900㎒ 비면허 대역에서 약 1㎞ 정도까지 상호무선통신이 가능한 통신 기술로, 별도 통신요금 부담이 없고 IPv6가 지원돼 확장성이 높으며 보안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Wi-SUN은 기존 근거리무선통신 방식의 장점을 유지하고, 다른 근거리무선통신 방식의 단점을 보완한 측면이 많아 짧은 시간에 잦은 데이터 전송이 요구되는 지능형 원격검침 분야에서 이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Wi-SUN 방식에 의한 전력 검침 인프라는 현재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구축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015년 6월부터 8월까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소재 1312호 가구와 전남 나주시 남평읍 소재 1022호 가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국내 최초로 Wi-SUN방식에 따른 모뎀 등을 개발,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최적 출력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불필요한 통신 신호로 인해 무선망에 과부하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적화 알고리즘 등을 개발·적용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전파이용기술 실용화·보급 촉진을 위해 물리적 측면에서 안전한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지만 기존 전파 이용 환경에 적합하도록 운영될 수 있는 기술 기준과 표준화 등 관련 제도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 AMI가 활성화되기 위해 전파 출력 기술 기준 등에 관한 정책이 수립되고 국내 실정에 맞는 기술의 표준화를 추진하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한 인증 체계 도입 및 인증 기관 선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전파진흥협회(RAPA)는 비면허 무선주파수대역 기술 개발과 이용 활성화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국내 지능형 원격검침인프라 구축 사업을 지원해 왔다. 협회는 Wi-SUN 방식을 900㎒ 비면허 대역에서 구현하기 위해 산·학·연 전파 전문가로 연구반을 구성, 출력 조정 및 통화품질 향상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6년 5월에 관련 기준을 개정, 스마트계량기 함체 내에 설치된 모뎀의 통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파 출력 기준을 기존 10㎽에서 200㎽로 상향했다. 또 협회는 비영리 글로벌 단체(Wi-SUN Alliance)와 협력, 국제표준(IEEE 802.15.4g)을 기반으로 Wi-SUN 무선 솔루션의 인증과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국내 현실에 부합하고 향후 스마트시티·IoT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수십 kbps에서 100kbps 전송속도로 1㎞ 정도의 전송 거리까지 저출력의 낮은 에너지만으로 장시간 무선통신이 가능한 국내 Wi-SUN 표준안을 2016년부터 마련해 왔다.
2017년 7월에는 한국전력공사, 관련 제조업체 등과 협력해 기존 한국형 PLC와 상호 호환·지원되는 원격검침 모뎀 규격 Wi-SUN 통신 프로토콜에 관한 단체 표준을 제정했고, 올해 6월에는 Wi-SUN을 기반으로 하는 원격검침 및 네트워크 관리시스템(NMS)의 데이터 전송 프로토콜에 관한 단체표준도 제정했다.
현재 협회가 제정한 Wi-SUN 통신 및 네트워크 관리 시스템 통신 프로토콜 표준을 적용한 제품의 통신모듈에 대한 물리계층 및 프로파일 시험 절차 규격인 Wi-SUN 네트워크 인증표준(안)을 마련, 한국표준협회에 등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전문 인증기관이 없기 때문에 해외 인증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데 이 경우 국내 제조업체의 정보부족 및 인증비용부담 증가로 인해 스마트그리드와 AMI 사업 활성화가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협회는 Wi-SUN 얼라이언스와 협력관계를 구축해 Wi-SUN방식 전파기기에 관한 국내 인증기관 도입과 관련 산업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협회는 Wi-SUN 무선통신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그리드를 비롯한 AMI 지능형 원격검침인프라가 전국에 조속히 구축돼 일반 가정에서 계시별 요금제를 택하고, 스마트폰으로 전력사용량 등 각종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하는 등 국민이 에너지를 효율 관리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정종기 한국전파진흥협회 상근부회장 jkchung2021@rap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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