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축 2634기 중 15%...구매·설치비 등 100억원 낭비
국가 예산으로 전국에 깔린 전기차 충전기(2634기) 가운데 15%는 최근 6개월 동안 한 번도 사용 실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하루 평균 1회 미만 사용 충전기도 73%나 됐다. 전기차 확산을 위해 국가 재원이 투입된 충전인프라 전면 점검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급량 실적 채우기에만 급급한 정책보다 실제 사용자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26일 전자신문은 충전인프라 서비스 업체인 타디스테크놀로지와 함께 전국에 구축된 전기차용 공용 급속충전기(50㎾h급 이상) 2634기 사용 실태를 분석했다. 이 결과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충전기가 전체 15%(386기)로 집계됐다. 충전기 구매·설치비로 환산하면 100억원을 투입한 시설이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여기에다 충전기 사용과 상관없이 매달 한국전력공사에 지불하는 충전기당 전기 기본요금을 합치면 연간 약 4억원이 추가된다.
조사에서 일평균 1회 미만 사용 충전기는 1936기로, 전체 가운데 절반이 넘는 73%였다. 국내 보급 전기차 수(5월 말 기준)는 3만6835대였다. 심각한 수요·공급 불일치를 보였다.
충전기 사용이 몰리는 곳은 특정 지역, 특화된 공간이었다. 전체 충전 사용 횟수 48만7108번 가운데 78%(38만3125번)가 698개 충전기에 집중됐다. 전국 2634기 가운데 하루 다섯 번 이상 사용된 충전기는 85기였다. 최소 10회 이상 사용한 충전기는 30기로, 전체 사용량 가운데 20%나 점유했다. 제주도청 내 급속충전기는 일평균 사용 수가 27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1회 최대 사용 시간(40분)을 적용하면 하루에 18시간 동안 기기가 작동되고 있는 셈이다.
조사 대상 전기차 충전기 대부분은 환경공단, 한전, 지자체 등 정부 예산으로 구축·운영되고 있었다. 혈세가 투입됐지만 효용성 검증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부 예산에 따르는 보급 물량 채우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부 예산이 효과 높게 쓰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석 선문대 교수는 “전기차 주행 성능이 향상되면서 이미 공급된 급속충전기 인프라와 실제 사용 패턴이 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충전기 물량을 무작정 늘리기보다 충전요금을 더 받더라도 사용이 많은 요충지에 충전기를 늘리는 등의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충전인프라 사각지대 해소뿐만 아니라 사용이 많이 몰리는 곳에 충전기를 추가하는 쪽으로 정책을 설계할 방침”이라면서 “충전기 사용 전국 실태를 점검해서 (공용 충전기가) 효과 높게 운영되도록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환경공단을 통해 400억원 안팎 예산으로 600기 이상 급속충전기를 보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도 민간 사업자를 선정, 충전기를 구축했다. 한국에너지공단과 경기도 등도 민간 대상으로 충전기(50㎾ 기준)당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한다. 국내 급속충전기 가격은 1500만~2000만원 수준이다. 설치비는 장소에 따라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이 든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