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프레스티지 '사기 또는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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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Prestige)'는 위신·명망 등으로 해석된다. 원래 마술 트릭·사기·환상이라는 뜻이었지만 사어(死語)가 됐다. 프레스티지 중의를 함축한 작품이 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6년 영화 '프레스티지'를 손꼽을 수 있다. 로버트 엔지어(휴 잭맨)와 알프레드 보든(크리스천 베일). 영화는 두 라이벌 마술사의 명망에 대한 욕망과 마술 트릭을 둘러싼 복수극을 그렸다.

마술사 지망생이었던 엔지어와 보든은 추구하는 마술이 달랐다. 엔지어는 안전한 방식을, 보든은 위험하더라도 신선하고 모험적 마술을 원했다. 보든의 욕심은 무리한 마술로 이어졌다. 결국 마술사 조수였던 엔지어 아내를 죽음에 빠트렸다. 분노한 엔지어가 보든을 총으로 쏴, 손가락을 절단하면서 둘 사이의 본격 혈전이 전개된다.

놀란 감독은 또 다른 라이벌 구도를 영화에 가미했다. 니콜라 테슬라와 토마스 에디슨이다. 보든보다 혁신적 마술을 원했던 엔지어가 테슬라의 힘을 빌리기로 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마술은 과학의 영역으로, 마술사의 갈등은 테슬라와 에디슨이란 과학자간 갈등으로 오버랩된다.

엔지어와 보든처럼 테슬라와 에디슨은 희대의 앙숙이었다. '전류 전쟁'이라 불릴 만큼 과학사적으로 중요한 논쟁의 주인공이다. 둘의 악연은 1884년부터 본격 펼쳐졌다. 테슬라는 미국 에디슨연구소 연구원으로 발탁되면서 자신이 고안한 교류(AC) 전기를 에디슨에 제안했다. 교류가 에디슨 직류(DC) 전기보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 대중화에 유리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미 직류 전기에 많은 돈을 투자한 에디슨은 테슬라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또 테슬라의 발명 성과에 대한 보너스 지급 약속도 유머로 흘러 넘겼다.

에디슨에 실망한 테슬라는 회사를 차렸다. 에디슨은 자기 업적에 도전하는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 교류 전기를 비방했다. 사형 집행을 위한 전기의자를 교류 방식으로 개발, 흠집내기에 몰두했다. 교류가 인체에 위험하다는 게 핵심 논리다. 테슬라는 자신의 몸으로 교류 전기 통과 실험을 진행하며 안전성을 피력했다. 결국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 전구 가동 사업을 테슬라가 따내면서 전류 전쟁은 테슬라 승리도 끝났다.

하지만 테슬라는 살아 생전 에디슨 명성에 가려져 빛을 받지 못했다. 사업적 안목과 능력은 에디슨에 못 미쳐 많은 부를 누리지 못하고 1943년 빚에 시달리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높이 오르는 새일수록 추락의 고통은 크다”라는 영화 속 명대사처럼 말이다.

엔지어와 보든. 테슬라와 에디슨. 두 라이벌 관계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영화 프레스티지가 끝날 때까지 해답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고를 꿈꿨던 마술사와 과학자의 열망이 관객 박수와 과학사적 위대한 발전을 남긴 건 분명하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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