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내우외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년 입시부터 학령인구 감소로 정원 미달 사태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정부 지원사업 개편에 따른 구조조정도 가시밭길이다.
18일 교육부와 대학에 따르면 상당수 대학이 기본역량진단 탈락에 따른 구조조정, 총장 공백 등으로 내홍을 겪는 가운데 정부 규제는 강화되고 해외 진출 길도 좁아지고 있다.
교육부는 내년 입시를 통해 진학할 2020학년도 입학자원이 47만812명일 것으로 추산했다. 고교 졸업생은 물론 재수생, 선취업 후진학, 정원 외 입학 등을 모두 고려한 수치다. 이 숫자대로면 전체 대학 정원은 2만2237명이 부족하다.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각 대학은 안팎으로 터지는 일을 수습하기 급급하다. 서울대는 당장 19일부터 총장 공백 사태를 맞는다. 앞서 선출한 강대희 최종후보가 성희롱 의혹 등으로 사퇴했다. 각 단과대학 학장과 대학원학장단은 성낙인 총장 임기가 19일 만료되면 총장권한대행체제를 운영하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강 후보 사퇴 책임 논란이다. 총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가 후보 조사와 검증까지 거쳤으나 불거진 문제였기 때문이다.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뿐만 아니라 서울대 교수사회 전체의 안일한 분위기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공백 우려보다 총장 후보 사퇴를 둘러싼 학내 잡음이 더 큰 문제로 대두됐다. 학생 측에서는 직접 총장 후보 검증에 참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하대는 총장 공백에 이사장 승인 취소 위기까지 더해졌다. 교육부는 교비집행, 부속병원 시설공사 및 임대차 부당 계약 등 책임을 물어 인하대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의 조양호 이사장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할 예정이다. 반년 동안 공석이었던 총장 선출은 한진 일가 비리에 휘말리면서 또 다시 지연됐다.
대학 기본역량진단 1단계(자율개선대학)에서 탈락한 대학은 보직자가 대거 사퇴하거나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조선대는 단과대학별로 구조조정안을 마련해 역대 최대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외국어대·공대 등 4대 단과대가 39개 학과를 18개 학부로 개편한다. 행정조직도 개편해 예산을 절감하고 재정 건전성을 강화한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주요 보직자가 대학기본역량진단 1단계 평가 결과 책임을 지고 일괄 사임했다.
교육부는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비리를 저지른 사학에 대한 고삐를 당겼다.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집중조사·감사단을 운영한다. 입시·학사비리 제한도 강화한다. 기본역량진단 1단계 평가를 통과해도 비리대학은 제외된다.
대학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추진한 유학생 유치와 교육과정 수출도 녹녹치 않다. 가장 관심이 많았던 중국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중국은 한류열풍에 따라 국내 교육과정을 도입하려 했으나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분위기다.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획기적인 혁신은 시도조차 못 한다. 각 대학은 논문, 교수 등 '수치' 확보에 급급하다. 학과를 통폐합하고 교양과목은 과감하게 MOOC로 돌린 애리조나 주립대학이나 캠퍼스 없이 전 세계 7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미네르바대학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정부 대입 개편안도 지방대학에게는 골칫거리다. 정부는 대학 입시 개편으로 인한 신입생 모집 형태의 공론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의제 중 수시와 정시 비중을 정하는 안도 논의한다. 수시·정시 비율이 정해질 경우 학생부 교과전형에 의존해온 지방대학은 이를 충족하기조차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비율 문제는 의제 자체에서 아예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대학은 규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 대학 총장은 “세계 혁신 대학을 모범사례로 들지만 우리나라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가 의문이 든다”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마당에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도서관 소장 도서 수까지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입학자원 추산> 출처=교육부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