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 펀치]<72>비전문가가 권하는 작은 국방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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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매일 탄약고 보초 서느라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아요.” 휴가 나온 제자의 푸념이다. 군에서는 보초 업무도 중요하고 어떤 일을 하던지 충실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귀대시켰지만, 마음 한구석에 그 불평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총검술, 사격, 제식 훈련 등 전쟁 관련된 훈련으로 보내는 20개월 남짓 젊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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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 등 젊은이에 비해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뒤처지는 것 같은 상실감도 이해된다. 2018 판문점 평화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 평화가 오면 해결될 일이지만, 우선 당장 작은 변화를 통한 국방 개혁은 절실하다.

군 업무는 적군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 전부였지만, 냉전시대가 끝나고 군에는 사회 공헌 역할이 추가됐다. 군에서 개발된 기술과 전문인력 양성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다. 이미 미국, 이스라엘 등 선진국은 군을 통해 미래를 견인해왔다.

1969년 미 국방부 연구기관인 미국방위고등연구국(DARPA: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은 세계 최초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군사용으로는 밀넷(MILNET)을 민간용으로는 알파넷(ARPANET)을 구축해 인터넷 효시가 됐다. 국방 목적으로 개발된 통신, 시물레이션, 암호기술 등이 민간에 이양돼 활용되고 있다. 우주항공기술을 연구하는 미항공우주국(NASA)도 DARPA에서 비롯된 연구기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많은 대학과 협력하고 있다. 비밀을 이유로 연구 대부분을 폐쇄시키는 우리의 국방연구와 비교된다.

1970년대 우리나라 전산 분야는 군에서 교육받은 예비역 공헌이 컸다. 컴퓨터 구경조차 어렵던 시절 군 전산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전산업무에 종사해 우리나라 정보화 주역이 된 이들이 많다. 1982년 서울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주도로 개통된 세계 두 번째 인터넷 구축 숨은 공로자 중에 군에서 컴퓨터를 경험한 예비역이 있다.

군의 지능화는 단순히 첨단 무기 도입이 전부가 아니다. 민간과 협력해 첨단 정보시스템을 개발해 기술을 공유하고, 병사 디지털교육으로 정보전력 강화와 인력 양성이라는 일거양득 기회를 노려야 한다. 미래 사이버전은 북한만이 아닌 모든 나라가 개입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군 디지털역량과 정보시스템이 군사력 측정 기준이다. 현대전은 총검술이 활용될 기회보다 정보전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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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군의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병사 코딩 기술과 인터넷 교육을 위해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강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민간과 협력해 체계적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문지식 습득기회가 제공되면 20개월 남짓한 병영생활이 더욱 활기차고 젊은이도 기대와 함께 입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병제가 이상적이겠지만 분단 현실로 미루어 의무 복무를 피할 수 없다면 군이 전문인력 양성 산실로 자리 잡는 것이 변화 최선책이다.

두뇌와 체력이 가장 왕성한 젊음을 총검술과 사격훈련으로 소비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기본 군사훈련과 필수 업무를 제외하고는 인터넷 전문지식을 배양해 현대전에 대비하고, 미래사회에 대비한 인력 양성에 공헌하는 대한민국 군의 모습을 기대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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