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 펀치]<71>형식과 무늬만 남은 디지털 문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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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취약 계층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맞춤형 기술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약속에도 디지털 격차는 여전하다. 오히려 디지털 역량과 활용에서 장애인, 장노년층, 농어민, 저소득층 등 디지털 취약 계층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60%를 밑돌고 있다. 노년층 700여만명과 장애인 200여만명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역량 불균형을 외면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디지털 격차만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로봇, 드론, 자율자동차 등 인공지능(AI)을 탑재한 기기가 사람을 대신하는 미래의 사이버 질서 확립도 중요한 이슈다. 자동차와 불이 인류에게 포기할 수 없는 이득을 가져왔지만 화재·교통사고 같은 골칫거리를 동반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도 사이버 폭력, 해킹, 인터넷 범죄 등 역기능을 가져왔다. 50%가 넘는 청소년의 유튜브와 게임 중독, 땅을 보고 걷는 스몸비족의 출현, 끊임없이 터지는 해킹 사고, 노년층 상대 인터넷 사기 등은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하는 디지털 문화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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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88년부터 6월을 디지털 문화를 강조하기 위해 정보문화의 달로 지정했다. 매년 체신부·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어지는 정보화 담당 부처가 한국정보화진흥원 주관으로 유공자 포상, 기념행사, 경진대회 등을 개최한다. “산업화에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정부와 전문가 합의로 시작된 정보문화의 달 행사는 올해 6월에도 계속됐다. 그러나 형식과 관습에 머물러 있는 정보문화의 달 행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디지털 문화가 해마다 뒷걸음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까지 정보 문화를 담당하던 정보문화진흥원(KADO)은 한국정보화진흥원에 흡수되면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고, 정보 문화 업무를 담당하던 조직과 예산도 대폭 감축됐다. 한국정보화진흥원 7개 본부 가운데 1개 본부만이 디지털 문화를 다루면서 구색 맞추기와 면피 정책 수행에 급급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디지털 문화 정책으로 정보 소외 계층을 지원하고 전 국민 인터넷 윤리 교육,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해소와 디지털 사회 혁신을 통한 공동체 현안 해결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치고 있다.

디지털 문화 정책이 후퇴해도 신경 쓰는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은 더욱 심각하다. 사무실에서 보고나 받고 기념행사에서 축사나 하는 장관과 기관장이 디지털 문화 혁신을 알 리 만무하다. 과기정통부의 단 1개팀(정보활용지원팀)이 대한민국 디지털 문화를 총괄하고 있는 현실이 갑갑할 따름이다.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취약 계층이 정보화를 갈망하고 불편을 겪고 있는지 찾고, 사이버 질서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디지털 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불분명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건전하고 밝은 사이버 미래를 국민에게 설득하고 함께할 수 있는 책임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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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속히 건전한 인터넷 질서 확립, 정보 취약 계층의 격차 해소,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해결 등을 위한 방안을 만들어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별개의 법·제도·산업을 만드는 것보다 모든 법과 제도에 정보 취약 계층을 배려하는 조항을 삽입하고, 지능정보사회의 약자를 위한 맞춤형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오늘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디지털 문화 창달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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