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29>특허를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

많은 스타트업 CEO들이 회사 소개 내지 홍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내용 중 하나가 특허 보유 여부다. 아직까지 별다른 매출 내지 이익을 달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남다른 아이디어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물인 특허야 말로 가장 손쉽게 잠재성을 확인시켜 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물론 특허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결과물이다. 실효성 높은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특허 등을 통해 보호 받지 못할 경우, 손쉽게 모방제품이 등장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 또한 특허를 보유할 경우 직접 사업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특허를 빌려주는 행위만으로도 적지 않은 이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특허는 중요한 결실임은 분명하지만 특허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 특허들 중에는 시장성이 있는 특허보다 시장성이 없는 특허가 더 많기 때문이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등록된 특허 중 약 70% 이상이 제품 등에 투영되어 사업화되지 못하고 있다. 즉 특허권은 독점적인 지위를 가져다주었을 뿐이지 해당 특허를 활용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기업을 꾸려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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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특허를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더 있다. 어떤 특허가 시장성이 있어 해당 특허 보유자에게 초과이윤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많은 경쟁자들이 해당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경쟁업체 대응 속도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다.

이에 부합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IBM은 1960년대 후반 대형 컴퓨터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이에 미국 법무부는 IBM이 부당한 독점 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해, IBM을 제소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법적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고, 공방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런데 미국 법무부는 1982년 별다른 법률 판결 없이 돌연 소를 취하했다. 이유는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IBM이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소를 처음 제기하던 시점에는 대형컴퓨터만 존재하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IBM이 거두는 막대한 수익을 지켜본 다른 기업들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소형컴퓨터와 개인용 컴퓨터까지 등장했다. 이로 인해 컴퓨터 시장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1980년대 이르러서는 대형컴퓨터를 살 여유가 없었던 중소기업도 소형컴퓨터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기존 대형 컴퓨터 고객도 소형컴퓨터 시장으로 급격히 이탈했다. 이 과정에서 IBM의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잠식됐고, 이윤율 또한 신규 진입 기업이 늘어나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당시 일부 칼럼리스트는 IBM 대형컴퓨터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얻은 이득보다 미국 법무부가 장기간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이 더 클 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는 특허라는 진입장벽이 우리 예상만큼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어쩌다 시장성 있는 특허를 출연해 선도기업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더라도 시장우위를 속단하기 어렵다. 흔히 선도기업은 전략적 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점을 제시한 연구결과가 있다.

저명한 경영학자인 제라드 텔리스와 피터 골드는 2002년 선도기업이었던 66개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수행했다. 이들 66개 선도 기업 중 60개가 후발기업에 의해 지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지어 어떤 분야에서는 최초 선발자는 아예 시장 점유율조차 얻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크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혁신자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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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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